세계적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92) 박사가 지난 14일 한신대에서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첫 방한이었던 1975년 한신대에서 희망을 주제로 강의했던 몰트만 박사는 이번 학위 수여식 후 진행된 짧은 강의에서도 희망의 메시지를 던졌다. 43년 전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당시엔 민주화와 인권운동 등 저항 속 희망을 얘기했다면 이번엔 통일과 정의구현을 통한 하나님 나라 실현의 희망을 말했다.
이날 한신대 장공관에서 만난 몰트만 박사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목소리에 힘이 묻어났다. 약간 쉰 목소리였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게 와닿았다. 몰트만 박사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에 펼치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의 사명”이라며 “하나님의 평화가 이 땅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통일에 대한 희망을 갖고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를 만큼 몰트만 박사는 한국의 상황에 관심이 많았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을 경험했던 그는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수차례 메시지를 던져왔다. 지난해에는 국민일보 주최 ‘희망을 얘기하다, 한국의 길을 묻다’ 특별대담을 통해 남북 간 대화를 강조했다.
몰트만 박사는 최근 남북 화해 무드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며 대화의 다음 단계는 ‘상호 인정’이라고 말했다. 몰트만 박사는 “(문재인정부 들어) 남북 간 대화가 상당 부분 진척되고 있는 것 같다”며 “여기서 중요한 건 북한은 공산주의식 적화통일 생각을 아예 버리고, 남한은 자본주의식 흡수통일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이다. 공존하면서 평화 속에 교류·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게 통일로 가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몰트만 박사는 서로에 대한 인정이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다면 교류와 협력은 민간 몫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기에 교회의 역할이 있다고 강조했다. 몰트만 박사는 “통일은 체제의 변화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며 “어떤 통일을 만들 것인가, 어떤 사회를 이뤄나갈 것인가 등 방향성과 목적을 교회가 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지만 몰트만 박사는 한반도 평화의 도래를 낙관적으로 봤다. 그는 “가난했던 나라가 선진국이 됐고, 군부독재 아래 있던 나라가 민주화를 일궈냈다”며 “통일 역시 희망을 놓지 않는다면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몰트만 박사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초청으로 18일 한 번 더 강단에 오른다. 그는 제103회 기장 총회가 열리는 제주 해비치리조트에서 ‘화해와 평화’를 주제로 강의한다. 몰트만 박사는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 독일과 폴란드의 화해, 동독과 서독의 화해 등 세 가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며 “우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는 고린도후서 5장 19절 말씀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산=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