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아보카도 체리…물 건너온 과일이 이젠 주인노릇

사진=게티이미지










‘신토불이(身土不二)’. 사람의 몸과 사람이 살아가는 땅은 다르지 않다는 뜻의 이 한자성어는 건강을 위한 섭생(攝生)의 정석으로 오래전부터 여겨져 왔다. 이 땅에서 재배되고 길러진 음식 재료를 섭취하는 게 건강과 장수를 위한 최선책이란 의미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신토불이의 신화는 깨지고 있다. 다양한 식재료가 소개되고 이국적 음식과 조리법이 속속 유입되면서 건강에 좋다면 ‘외국산’도 가리지 않는 식생활 습관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도 수입산 과일은 다른 식재료와 뚜렷하게 구별될 정도로 그 위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육류 어패류 생선 등 수입 식재료들이 국내산보다 가격이 낮을 경우에만 경쟁력을 갖추는 데 비해 수입산 과일은 국내산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도 불티나게 팔린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웰빙라이프(Well-being Life) 선풍에 따른 후속 효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좀 더 건강에 좋고 체질을 개선하며, 다이어트 효과가 있고 오래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음식이라면 토종과 수입산을 가리지 않게 됐다는 뜻이다. 유독 수입산 과일, 그 가운데도 열대지방 과일들이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국내산보다 훨씬 더 많은 항산화물질을 지니고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으로 여겨진다.

수입산·열대 과일의 기습

국내 대표적인 유통기업들의 과일 매출을 살펴보면 수입산 과일, 그중에서도 열대 과일들이 얼마나 많이 팔리고 있는지 금세 파악할 수 있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2015년부터 올해(지난 14일 기준)까지 가장 많이 팔린 과일은 바나나가 부동의 1위였다. 2015년 수입산 과일은 품목별 매출 순위 ‘톱 10’에 바나나와 체리밖에 들지 못했지만, 이듬해부터는 바나나 체리에 오렌지가 추가됐고 2016년에는 국내산 복숭아 수박 참외보다 오렌지 체리가 더 많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롯데마트의 과일 매출은 이런 현상을 훨씬 더 잘 보여준다. 지난 14일 기준으로 올해 이 대형마트의 바나나 매출은 전체 과일 매출의 17.3%를 차지해 국산 수박(14%)을 여유 있게 제쳤다. 수입산 오렌지가 16.0%로 2위였고, 국산 과일의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인 딸기(13.3%) 사과(12.8%)마저 한참을 앞섰다. 미국 칠레 호주 등지에서 수입되는 체리 역시 12.1%로 말 그대로 불티나게 팔린 셈이다. 올해의 경우 수입산 포도는 적포도(4.1%)와 청포도(5.6%)를 합치면 국산 귤(6.7%) 복숭아(5.5%) 참외(7.9%)보다 더 많이 팔렸으며, 국산 거봉포도(1.9%)의 다섯 배가 넘게 팔렸다.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 이마트 홈플러스 등 다른 대형 유통점에서도 순위는 다소 달랐지만 수입산 과일 강세 현상은 마찬가지였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전체 과일 매출 1위는 딸기였고, 2위가 수입산 바나나였으며 3위가 수입산 체리였다. 매출 ‘톱 10’에 바나나 체리 블루베리 오렌지 등 수입산 4종의 과일이 포함됐다. 현대백화점은 전체 과일 매출 순위는 공개하지 않았고, 이마트 홈플러스 역시 국산 과일과 수입산 과일 매출을 나눠서만 공개했다.

1인 가구·고령화·다이어트 선풍의 지표

바나나가 전통적 국산 과일의 대표주자인 사과보다 많이 팔리는 현상에 대해 롯데마트 관계자는 “1인 가구와 고령화 인구 증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혼자 사는 젊은층은 칼로 깎아야 먹을 수 있는 사과보다 씻지 않고 껍질만 까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바나나를 더 선호한다. 거기다 바나나는 한 끼 식사로도 그만이라 아침 대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편의점 도시락, 배달음식 인기처럼 ‘인스턴트 라이프’를 선호하는 1인 가구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식감의 바나나는 60대 이상 노인들도 씹기 딱딱한 사과보다 더 좋아하며, 다이어트와 미용에 관심이 많은 40, 50대 여성들도 칼로리가 낮고 식사 대용인 바나나를 찾는다고 한다.

또 하나 두드러진 특징은 멕시코의 적도 부근 지역이 원산지인 아보카도의 ‘기습’이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두 군데 모두 2016년까지 매출이 미미하던 아보카도가 지난해부터 수입산 매출 순위 ‘톱 10’에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다. 롯데마트의 경우 올해 이 과일은 전체 매출의 5.0%나 차지해 국산 복숭아(5.5%)만큼이나 많이 팔렸다. 매출은 지난해(1.3%)의 거의 4배에 달할 정도였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아보카도의 기습은 다른 대형 유통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보카도는 관세청 수입 통관량 기준으로 6년 사이에 무려 6배 증가했다. 2010년 457t이던 수입량이 2016년에는 2915t까지 늘었다.

아보카도의 기습은 고혈압과 당뇨 등 각종 성인병을 예방할 뿐 아니라 치료효과도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11종의 비타민, 14종의 미네랄, 충분한 단백질, 필수 지방산과 폴리페놀, 섬유소 등을 함유해 뇌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고혈압 당뇨 등에 좋을 뿐 아니라 다이어트에도 좋다는 것이다.

우리 몸의 활성 유해산소를 없애주는 항산화물질 중 하나인 폴리페놀은 극한적 기후 환경을 견디며 자란 식물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일종의 보호물질이다. 어떤 과일보다 비타민C를 풍부하게 함유한 체리와 오렌지, 대표적 항산화물질인 안토시아닌과 시력 보호에 좋다고 알려진 블루베리 등이 잘 팔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수입산 과일 선풍은 더 거세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런 전망은 점점 더 고령화 인구가 많아지고, 중년기 여성들의 다이어트·미용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며 결혼 적령기를 놓친 1인 가구 비율도 증가할 게 틀림없다는 데 기인한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일 하나를 골라도 자신의 몸에 맞는지,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지, 미용과 다이어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지는 습관이 요즘 소비자들에겐 몸에 밴 습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바로 섭취하는 과일뿐 아니라 아보카도·포도씨 오일, 화장품 등에 함유된 망고·체리 추출물, 건블루베리 건포토 같은 수입산 과일 부산물류까지 합치면 수입량이 유통업계 집계치보다 배 이상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과일, 디저트가 아닌 주식(主食)

최근 들어 수입산 과일이 국산 과일보다 인기를 얻는 또 다른 이유는 식사 후 먹는 디저트가 아니라 식사 대용 또는 조리용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사과 딸기 복숭아 배 귤 등 국산 과일들은 당도가 높아 대부분 디저트로 섭취되는데 반해 바나나와 아보카도는 한 끼 식사로 쓰이거나 음식에 넣어 조리할 수 있는 식재료이기도 하다.

한 조리 전문가는 “너무 단 과일은 식재료로 쓰기엔 부담스러울 수 있다”며 “버터처럼 부드럽게 사용할 수 있는 아보카도는 육류 어류 등과 조리하기에 아주 좋고, 오렌지 체리처럼 신맛이 강한 과일은 각종 채소와 어울려 샐러드로 먹기에 좋다”고 했다. 포도보다 건포도, 말린 블루베리·크랜베리 등 건조과일이 잘 팔리는 것도 조리용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일은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디저트로 분류되던 견과류가 잘 팔리는 것도 이런 현상을 반영하는 트렌드다. 롯데마트의 경우 견과류는 이달 1일부터 16일까지의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41.5%나 급증했다.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호두 잣 땅콩 등 토종 견과류보다 요즘은 아몬드 브라질너트 카카오닙스 수입호두 등이 더 많이 팔리는데, 칼로리가 적은 아침 시러얼 식사법이 습관화된 소비자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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