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라동철] 동물원의 불편한 진실



동물원은 맹수를 비롯해 다양한 희귀 동물을 우리에 가둬두고 관람할 수 있게 한 시설이다. 고대 이집트나 중국 은나라 때 동물원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걸 보면 역사가 장구하다. 근대 최초의 동물원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조가 1752년 빈에 설립한 쇤브룬 동물원이다. 우리나라는 1909년 11월 서울에서 개장한 창경원동물원이 최초다. 일제가 순종 황제의 처소였던 창경궁 내 건물들을 헐어버린 뒤 우리를 지어 전국에서 각종 동물을 수집하고 일본에서 코끼리 사자 호랑이 곰 낙타 원숭이 공작 등을 들여와 문을 열었다. 현재 국내에는 창경원동물원이 이전해 온 국내 최대 규모의 서울대공원동물원, 75년 개장한 어린이대공원동물원, 민간 시설인 에버랜드동물원 등 공공과 민간이 운영하는 동물원들이 산재해 있다.

동물원은 다른 동물들의 서식지를 파괴해 온 인간들이 만들어낸 기이한 공간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기자 출신 미국 작가 토머스 프렌치는 2010년 펴낸 ‘동물원 이야기(zoo story)’란 저서에서 동물원을 “야성(野性)을 잃어버린 동물들과 야성이 그리운 인간이 만나는 장소’라고 정의했다.

동물원은 인간에게는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갇힌 동물들에게는 감옥이나 다름없다. 비좁은 우리에 갇혀 구경거리가 되다보니 스트레스로 이상행동을 보이는 동물들도 있다. 기회만 오면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대전오월드 동물원에서 살던 8살짜리 암컷 퓨마 ‘뽀롱이’가 그런 경우다. 지난 8일 아침 직원이 청소한 뒤 우리 철문을 잠그지 않고 나간 틈을 노려 탈출을 감행했다. 그러나 수색대에 쫓기다 오후 9시44분 우리에서 400m쯤 떨어진 동물원 내 야산에서 발견돼 사살됐다.

동물원 맹수 탈출 사고는 이따금 발생한다. 2010년 12월엔 서울대공원에서 말레이곰이 탈출해 인근 청계산을 휘젓고 다니다 9일 만에 생포돼 동물원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뽀롱이에게는 그런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우리를 벗어나서도 사람을 공격하지 않았고 멀리 떠나지도 못한 걸 보면 두려움에 떨며 숨어다녔던 것 같은데…. 생포할 수 있는 기회를 서둘러 포기한 건 아닌지. 갇혀서는 야성에 족쇄가 채워지고 자유를 찾아나서면 죽임을 당하는 동물원 맹수들의 신세가 애처롭다.

라동철 논설위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