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423호 소법정. 한때 한국 연극계 거장으로 불렸던 이윤택(사진)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상습 강제추행 피고인 신세로 전락한 채 피고인석에 섰다. 황토색 수의를 입은 그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정면의 법대를 응시했다. 재판부가 선고문을 읽자 그가 수년간 저질러왔던 추행 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꿈을 이루고자하는 피해자들의 처지를 악용한 것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80시간의 성폭력치료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 아동·청소년기관 취업제한도 함께 명령했다.
이 전 감독은 1999년부터 18년간 여성 극단원 17명을 상습적으로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됐다. 접수된 고소장에 기재된 혐의만 60여개였다. 검찰은 이 중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행위들로만 범죄사실을 구성해 이 전 감독을 기소했다. 공소장에는 피해자 9명을 25회에 걸쳐 상습적으로 강제추행한 혐의가 적시됐다. 또 피해자를 추행해 우울증 및 적응장애 등 정신적 상해를 입힌 혐의(유사강간치상)도 포함됐다.
재판부는 25회 중 7회만 제외하고 8명에 대한 상습 강제추행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유사강간치상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선고가 진행된 20여분간 재판부의 강도 높은 질타가 이어졌다. 재판부는 “연기지도나 발성연습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신체접촉의 허용 범위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이어 “절정의 연기를 경험하기 위한 비상수단이었다고 하지만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는 이상 이는 수긍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별다른 사회경험 없이 오직 연극을 하겠다는 꿈을 갖고 이 전 감독 지시에 순응했던 사람들”이라며 “자신의 권력을 남용해 피해자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수치심과 고통, 좌절감을 안겨줬다”고 꾸짖었다. 그가 법정에서 보인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이 이어졌다. “완성도 높은 연극을 위한 과욕 때문이었다거나 피해자들이 거부하지 않아 고통을 몰랐다고 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투 운동’에 편승해 자신을 악인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등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재판부가 징역 6년을 선고하자 법정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검찰의 구형은 징역 7년이었다. 소송에 참여한 변호인들과 피해자들이 손을 잡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 전 감독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교도관들의 안내에 따라 다시 구속 피고인 대기실로 걸어 들어갔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