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올해 기록적인 집값 상승을 기록한 것처럼 세계 각국도 최근 ‘미친 집값’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가 전 세계 주택가격 상승을 견인 중이다. 하지만 미국이 본격적으로 금리 인상에 나서는 등 양적 완화가 종료되면 주택시장이 무너지면서 다시 한번 금융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지난해 4분기 글로벌실질주택가격지수(GRHPI)는 160.1로 집계 시작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 이 지수는 2000년 당시 주요국 주택가격을 100으로 설정한 후 이들 나라의 ‘실질 주택가격(물가상승분이 반영된 주택가격)’ 평균치다. 쉽게 말해 지난해 4분기 주요국의 집값은 2000년에 비해 60% 올랐다는 얘기다. 이 지수에 따르면 48개국에서 전년 대비 실질 주택가격이 일제히 올랐다.
세계적인 집값 상승은 각국의 주요 도시가 견인한다. 미국 연방주택금융청(FHFA)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라스베이거스와 샌프란시스코의 주택가격은 전년 대비 각각 16%, 13% 올랐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의 집값은 1991년과 비교했을 때 338%나 뛰었다. 홍콩의 집값은 최근 10년간 191%가 올라 현재 아파트 3.3㎡당 가격은 한국 돈으로 1억원이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아일랜드 언론 아이리시타임스에 따르면 최근 아일랜드의 집값은 지난해에 비해 21% 올랐다. 수도 더블린만 보면 상승률은 더 올라간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는 40만 유로(약 5억2000만원)로 고작 방 1개짜리 아파트를 살 수 있다. 현지 부동산전문매체 아이엠익스팻은 “제2의 ‘튤립 버블(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 투기현상)’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라고 지적했다.
유럽에서 그나마 집값이 낮은 편이었던 포르투갈의 리스본도 최근 해외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집값이 급등했다. 2013년에 비해 전국의 주택가격이 평균 25% 올랐고, 리스본은 60%나 뛰었다.
이런 과도한 집값 상승의 부작용은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비싼 임대료나 주택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없는 시민들은 도심 집값이 올라갈수록 더욱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솔라노카운티에 거주하는 대니 핀레이(30)는 매일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115㎞ 떨어진 샌프란시스코의 직장으로 출근해야 한다. 통근 시간만 4시간이 넘게 걸린다. 핀레이는 CNBC방송 인터뷰에서 “출퇴근 때문에 항상 피곤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집값은 너무 비싸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아예 제대로 된 집에서 사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지역매체 거버닝의 최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포틀랜드를 중심으로 집 대신 캠핑카 등 차에서 거주하는 사람이 1년 새 46% 늘었다. 이 지역은 차량 내 장기 거주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거버닝은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면서 집값이 폭발하고 있는 게 사람들을 집에서 내모는 원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홍콩에서는 높은 집값 탓에 ‘맥 난민(Mc refugee·맥도날드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사람)’으로 전락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 비영리단체 국제청년회의소(JCI)가 지난 6∼7월 116개의 맥도날드 매장을 조사한 결과 ‘맥 난민’은 334명에 달했다. 이는 2013년 당시 57명이었던 것에 비해 6배 이상 늘어난 수치라고 JCI는 설명했다. 게다가 맥 난민 중 대부분이 노숙자였던 과거와 다르게 최근 맥 난민은 53%가 홍콩에 거처와 일정한 소득이 있는 사람이었다. 홍콩 시민 모니카 라우(52)는 “방에 창문과 에어컨이 없고 바퀴벌레도 너무 많이 나와 맥도날드에서 잔다”며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지만 그럴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는 치솟는 방값 때문에 집을 구해야 하는 대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블린의 대학생들은 적당한 가격의 자취방을 찾기 위해 매학기 ‘사냥’에 나서야 한다고 아이리시타임스는 보도했다. 코크대학의 학생회장인 켈리 코일은 “집값 대란을 빌미로 학생을 속이는 집주인이 늘고 있다”며 “올 들어 일주일에 225유로(약 30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자취방도 여럿 봤다”고 말했다.
아일랜드의 일부 대학생과 활동가는 지난달 7일부터 더블린에서 높은 집값을 잡지 못하는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모두에게 집을(HOMES FOR ALL)’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주택장관에게 집값 대란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포스트가제트는 “리스본에 부동산 붐이 불면서 주민들은 쫓겨나고 도시의 특성이 망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루이스 멘데스 리스본대 지리학 교수는 “최근 몇 년간 리스본에는 젠트리피케이션 폭풍이 불었다”고 설명했다. 리스본의 한 시민은 “여기는 부자와 관광객들만을 위한 도시로 변하고 있다. 이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기가 막힐 뿐”이라고 말했다.
세계 곳곳의 집값이 고공행진하고 있는 원인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을 필두로 장기간 지속된 저금리 기조가 꼽힌다.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자금이 부동산으로 쏠렸고,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국가까지 늘면서 집값 상승에 불이 붙었다는 것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집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이유는 세계적으로 저금리 기조가 이어졌고 주택담보대출의 이자율이 낮은 탓”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세계적인 집값 상승은 계속 이어질까. 문제는 계속 상승곡선만 그리던 주택가격이 정점을 찍고 하락 추세로 반전될 때 더욱 큰 혼란이 야기된다는 데 있다. 주택 가격에 거품이 잔뜩 껴있는 상태에서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 완화가 종료되면 집값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스위스의 투자은행 UBS는 영국 런던과 미국 뉴욕, 홍콩 등은 주택가격이 근로자 평균 연간소득의 10배에 육박하는 등 ‘글로벌 부동산거품지수’가 높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 부동산에 투자됐던 돈이 채권과 예금 등 안전자산으로 빠르게 옮겨갈 확률이 높다. 특히 한국처럼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가계부채가 큰 폭으로 늘어난 나라는 금리 인상에 더 취약하기 마련이다. 10년 만에 금융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