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남북 정상 간 비핵화 실천 합의가 담긴 ‘9월 평양공동선언’은 2005년 6자회담 당사국의 9·19 공동성명 13주년이 되는 19일 깜짝 발표됐다. 북한이 핵 포기를 선언했지만 끝내 무용지물로 전락했던 9·19 공동성명 발표일을 택한 것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절치부심의 의지로 해석된다.
특히 다음 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분명하다는 점을 확인시키기 위한 차원이기도 하다. 평양공동선언에 더해 김 위원장의 ‘비공개 메시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될 경우 북·미 비핵화 협상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전날까지도 합의가 어렵겠다는 관측이 적지 않았지만 정상 간 결단으로 마침내 비핵화 실천 합의가 빛을 보게 됐다. 비핵화 논의는 그동안 남북 정상 간 의제로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다.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중요하다보니 남북 관계 발전 틀 속에서 제한적으로 다뤄진 게 전부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공동선언 택일은 정신적 뿌리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4선언을 완성시키겠다는 뜻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 표현이 처음 등장한 데 이어 평양공동선언에서 정상 간 비핵화 실천 합의가 처음 이뤄진 것이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방북 첫날인 18일까지도 평양공동선언 도출 여부를 장담하지 못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선언 도출 준비는 했지만 실제로 합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평양에 도착하자마자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평양공동선언 논의에 착수했다. 회담에 우리 측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북측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등 대미(對美) 대화 채널 총책임자들이 배석한 것도 비핵화 실천 합의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
문 대통령은 공동언론발표에서 “판문점 선언 이후 한반도에는 역사적 사변이라고 해도 좋을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상시적으로 우리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새로운 남북시대가 열렸다. 너무나 꿈같은 일이지만 눈앞에서 분명히 이행되고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오는 23일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으로 출국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24일(현지시간)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 협상 재개 문제와 향후 로드맵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 실장은 “평양공동선언 내용 이외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논의 결과를 토대로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 속도를 낼 수 있는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메시지를 가지고 간다는 의미다.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 중인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도 이날 평양에서 기자들을 만나 “분명히 선언문에 담지 못한 김 위원장의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메시지를 문 대통령이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준구 기자, 평양공동취재단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