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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덩어리 ‘내 기분’ 치료기, 10만 독자가 위로받았다


 
베스트셀러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쓴 백세희 작가. 백 작가는 12주간 정신과 전문의와 나눈 대화를 에세이로 엮었다. 작가 제공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하다가도 떡볶이가 먹고 싶다. 작가는 이토록 모순된 감정을 느끼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고 했다. 6년 넘게 정신과 병원을 전전하며 답을 찾았다. 그리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찾은 병원에서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증이 지속되는 상태) 진단을 받았다. 7주째 서점가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저자 백세희(28)씨의 이야기다.

“사실 서점에서 판매 순위를 볼 때 말고는 큰 인기를 실감하지 못했어요. 주변 사람들이 ‘여기 네 책 있다’고 사진을 보내거나 사인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 ‘와 많이 팔리긴 했구나’라고 느끼죠.”

‘죽고 싶지만…’은 작가가 12주간 정신과 전문의와 나눈 대화를 엮은 에세이다.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를 겪고 있는 작가는 상담 때마다 녹음한 내용을 그대로 책에 옮겼다. 친구에게도 밝히기 어려운 가정사부터 저자가 느끼는 지나친 자책과 의존, 외모에 대한 강박 등이 솔직하게 담겼다. 지난 1월 200부 판매를 목표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고, 뜻밖의 호응을 얻어 3쇄까지 찍었다. 지난 6월 1인 출판사 ‘흔’을 통해 정식 출간된 후에는 11쇄를 돌파, 10만부 이상 판매됐다.

백씨와의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그는 늘 에세이가 쓰고 싶었다고 했다. 문예창작과를 나와 출판사에서 5년간 일하면서도 변함없었던 꿈이다. 그렇지만 첫 책이 ‘정신과 치료기’가 될 줄은 몰랐다. 스물여덟 살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거라곤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블로그에 내원 기록을 올리던 게 시작이었다. 책을 내기로 결심한 건 첫 번째로 달린 댓글 때문이다. 백씨는 “자신의 삶이 온통 어둠뿐이었는데, 제 글을 읽는 게 한 줄기 빛과 같다더라”며 “이 말에 용기를 얻어 책까지 내게 됐다”고 했다. 펀딩으로 2000만원이 모였을 땐 겁도 났다. ‘욕먹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악몽까지 꿨다고 했다. 그래도 자신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속은 곪아 있는 애매한 사람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싶었다.

“초기에 붙인 가제는 ‘괜찮은 하루’예요. 정말 평범하죠? 원고가 완성돼 가면서 제대로 된 제목을 만들어야겠다 싶었는데, 프롤로그를 쓰던 중 지금의 제목이 떠올랐어요. 저는 항상 제 자신이 모순적이고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백씨는 인기 이유를 묻자 “제목 반, 기획 반인 것 같다”고 답했다. 그만큼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에 대한 평가가 좋았다. 작가는 오래전부터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애매한 기분’에 시달렸다. 극단적인 생각까지 치닫는 우울감에 잠길 때도 많았다. 그러다 배가 고프면 언제 그랬냐는 듯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이런 상반된 마음 상태를 제목으로 넣었다. 백씨는 “주위에 물어보니 한 명도 빠짐없이 좋다고 했다”며 “전문가가 아닌 우울증 환자가 솔직하게 쓴 치료일기라는 점도 신선하게 느껴진 것 같다”고 했다.

우울증 환자가 쓴 책이었지만 우울한 감정만 나열하고 싶진 않았다.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전문의의 의견을 함께 넣기로 했다. 처음엔 상담 내용을 산문으로 풀어냈지만 저자와 전문의의 말이 섞여 가독성이 떨어졌다. 대화 형식으로 바꾸니 작가의 상태도, 전문의의 피드백도 바로바로 와 닿았다. 상담을 녹음한 건 책을 내기 위한 작업은 아니었다. 백씨는 긴장을 하면 심장이 뛰고 머리가 하얗게 변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중요한 발표나 미팅이 있을 때 녹음기를 켰다. 백씨가 버려야 할 ‘나쁜 습관’ 중 하나다.

처음 정신과를 찾은 건 만으로 스물한 살 때다. 돈이 없어 대학 내 무료상담센터를 이용했는데 “상처만 잔뜩 받았다”고 했다. 수없이 병원을 옮겼다. 이비인후과처럼 증상만 묻고 약을 처방해주는 곳도 있었고, 울면서 나선 병원도 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덕에 지난해 ‘가장 잘 맞는 선생님’을 만났다. 이곳에서 기분부전장애라는 병명도 처음 들었다.

“치료에 대한 편견은 없었는데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힘들었어요. ‘경도의 우울증’(조금 우울함)이라고 하지만 정말 이게 병인가, 그냥 내 성향이 이런 건가 고민이 됐죠. 질환이라고 인지하는 과정이 힘들더라고요.”

백씨는 지금도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1년4개월째 저자와 함께하고 있는 전문의는 후기에서 “책을 낸다는 계획과 함께 원고를 받았을 때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었다”고 썼다. 그래도 출간을 제안했을 때 흔쾌히 승낙했다고 한다.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뒤 전문의의 반응을 묻자 “정신과에 대한 편견, 장벽이 많이 낮아졌다는 사실에 큰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고 백씨는 전했다.

지난 9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68만760명으로 2012년 58만7860명에 비해 15.8% 늘었다. 특히 20, 30대 환자가 급증했다. 20대의 경우 인구 10만명당 진료인원이 750명에서 1096명으로, 30대는 865명에서 1054명으로 각각 46.1%와 21.8% 증가했다. 취업난과 주택난, 사회 초년 시절 겪는 스트레스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백씨는 책을 낸 후 독자들과 일종의 ‘연대감’을 느낀다고 했다. 자신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다는 메시지를 받으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싶어 위안이 된다. 마음의 회복 속도도 빨라졌다. 그는 “이 세상에서 별다른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주 미약하게나마 건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돼서 기쁘다”며 “제 자신을 평가절하하고 괴롭히는 편이라 지금도 ‘그냥 운이야’라고 채찍질한다. 그래도 10년 뒤의 제가 지금의 저를 만난다면 ‘대단하다’고 말해줄 것 같다”고 했다.

‘죽고 싶지만…’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1권에선 독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마음의 적정선을 유지했지만 2권에선 ‘이 사람 좀 이상하네’ 싶을 정도로 솔직하고 깊은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새내기 작가로서 “언젠가는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백씨는 정신과 치료에 대한 편견 때문에, 혹은 자신과 맞는 병원을 찾지 못해 속으로만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조언을 건넸다. 상처가 거듭되더라도 자신과 맞는 병원을 찾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그는 “몸에 상처가 나거나 부러졌을 때처럼 마음도 뚝 부러진 느낌이 들 때가 있다”며 “그럴 땐 연고를 바르거나 누군가에게 털어놓아야 한다. 특히 친구가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보다 의사가 ‘괜찮다’고 하는 말은 몇 배로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다만 상담 과정에서 불편함을 느끼면 즉시 중단해도 괜찮다고 덧붙였다.

백씨가 가장 중요하게 꼽은 건 ‘자책’을 멈추는 일이다. “저는 끝없이 저보다 심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사례를 읽고 비교하면서 유난 떨지 않으려고 노력했었어요. 그럴수록 속은 더 곪아갔고요. 단순히 우울증이 있나 없나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에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힘들 땐 아 나 지금 힘들구나, 우울할 땐 우울하구나, 하고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길 바라요. 고통은 완전히 상대적이니까요.”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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