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환한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방북 대국민 보고에서 연내 종전선언 목표를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오는 24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논의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한동안 시들시들했던 종전선언 논의가 평양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은 전쟁이 끝나고 적대 관계를 종식시키겠다는 정치적 선언”이라며 “그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이 시작되는 것이고, 평화협정은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는 최종 단계에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 “평화협정 체결 때까지 기존의 정전체제는 유지된다”며 “따라서 유엔사의 지위나 주한미군 주둔 필요성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종전선언의 의미를 세세하게 설명한 것은 종전선언을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이는 미 조야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제가 말한 것과 똑같은 개념으로 종전선언을 생각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설명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비핵화 의지를 확약하면서 6·12 북·미 정상회담 때 합의한 4개 사항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구축, 완전한 비핵화, 유해 송환이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이행돼야 한다는 게 북측의 일관된 주장이다.
북한은 6·25 때 전사한 미군 유해를 미국에 송환해 4개항 중 하나를 이행했다. 또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실험장 시설을 일부 폐쇄했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이에 대한 상응 조치를 취한다면 영변 핵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포함한 추가 비핵화 조치를 계속 취할 수 있다는 용의를 밝혔다. 이는 9월 평양공동선언에 명시된 내용이다.
문 대통령이 ‘남북 정상이 논의했지만 합의문에 담지 않았다’고 밝힌 부분은 핵 신고와 비핵화 로드맵에 관한 김 위원장의 구상으로 해석된다. 종전선언을 포함해 북한이 원하는 상응 조치에 대해서도 남북 정상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향후 북·미 협상은 양측이 테이블에 올려놓은 조치들의 순서와 이행 시점을 정하는 과정이 될 전망이다.
문 대통령은 남북 관계 개선과 관련해선 군사 분야 합의를 중요한 결실로 꼽았다. 문 대통령은 “이 합의가 제대로 이행된다면 남북은 우리의 수도권을 겨냥하는 장사정포와 같은 상호간 위협적인 무기와 병력을 감축하는 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사 분야 합의서가 공개된 이후 국내에선 ‘핵은 그대로인데 성급하게 무장해제했다’는 비판이 제기된 상태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금강산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전면 가동을 위해 북측의 몰수 조치를 해제해 달라고 요청했고, 김 위원장도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산가족 면회소를 비롯해 금강산관광지구에 있는 남측 자산은 2010년 4월 북측에 몰수되거나 동결됐다. 2008년 박왕자씨 피살사건 이후 정부가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자 북한이 이에 반발해 취한 조치다. 몰수 조치가 해제되면 시설 개보수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남북 정상이 합의한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개소를 위해 북측과 실무 논의를 거쳐 기존 면회소 건물 보수 작업에 들어갈 방침이다.
평양선언에 넣지는 않았지만 남북 정상이 합의한 사안 중에는 남북 국회회담 개최와 지자체 교류 활성화도 있다. 김 위원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대고려전’ 때 북측 문화제를 함께 여는 것에 대해 협력하기로 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