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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배병우] 한은 총재 ‘진실의 순간’



요즘 정책당국자 중에서 가장 고심이 깊은 사람 중 하나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일 것이다. 지난 3월 2일 44년 만의 첫 연임 한은 총재로 지명됐을 때만 해도 이 총재는 고용과 경기가 이처럼 나빠질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3.1%는 잠재성장률 상부에 해당하는 ‘양호한’ 성적표였다. 물가상승률 1.9%는 한은의 물가억제 목표인 2%에 근접했다. 이 총재는 이들 지표를 바탕으로 이미 금리 인상 궤도에 진입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따라 한은 기준금리도 곧 올릴 수 있다고 자신했을 것이다. 금리 인상은 1500조원까지 불어난 한국 경제의 시한폭탄인 가계부채를 제어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4월 이후 기업투자 급감 등에 따른 내수 부진과 고용 침체가 확연해졌다. 특히 7, 8월 전년 대비 취업자 증가폭이 각각 5000명과 3000명으로 급감하는 등 고용 악화는 예상을 크게 넘는 수준이다. 고용 침체로 견실하다고 평가돼 온 민간소비까지 둔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미 연준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방기금금리의 목표 범위를 2.00∼2.25%로 올렸다. 올 들어 세 번째 인상으로, 한·미 금리 차는 0.75% 포인트로 벌어졌다. 11년2개월 만에 최대 격차다. 한은의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그렇지만 한·미 간 금리 차로 인한 자본 유출 위험 등으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결국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10월 금통위가 열리기 6일 전 9월 고용동향이 발표된다. 경제 예측기관들은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증가폭이 마이너스가 되는 등 고용 상황이 더 악화됐을 것으로 예상한다. 고용 침체가 장기화되는 속에서 금리 인상을 단행하려면 상당한 역풍을 감수해야 한다. 한은의 경제 예측 능력도 도마에 오를 게 분명하다. 성장과 고용 등 대부분의 지표가 한은의 4월 ‘수정 경제전망’보다 크게 악화됐다. 이 총재가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위험을 정부에 경고한 바도 없다. 금리 인상 타이밍 실기와 한은의 예측 실패에 대한 화살이 이 총재에게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경제가 이처럼 나빠지는데 한은은 너무 조용하다는 지적이 뼈아프다. 이 총재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진실의 순간’이 멀지 않았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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