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가 필요한 어떤 말은 발화 순간, 자신과 그를 둘러싼 세계를 통째 바꾼다. 동화 ‘안녕, 우주’는 소심한 열한 살 소년 버질이 그런 말을 하게 된 어느 날의 기적을 독창적이면서도 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버질은 늘 말이 별로 없다. 작은 키에 빼빼 마른 이 소년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항상 놀림을 당한다. 가족들은 그를 ‘거북’이라고 한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항상 느릿느릿 움직이기 때문이다. 버질은 두 형이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들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만들어졌고, 자신은 그 공장의 남은 부품으로 만들어진 아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랐다. 학교에서는 악동인 골목대장 쳇이 그를 ‘띨띨이’라고 부르며 못살게 군다.
할머니는 그런 버질에게 여러 필리핀 전래동화를 들려주며 용기를 북돋는다. 예를 들면 ‘슬픈 왕 페데리코’. 자기가 슬프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페데리코는 어느 날 혼자 울게 되고 온 나라가 물에 잠긴다는 얘기다. 할머니는 손자가 마음속 아픔을 입 밖으로 내길 바라지만 버질은 그러지 않는다.
어느 날 버질은 유일한 친구인 카오리의 집에 가기 위해 숲을 지난다. 심술꾸러기 쳇과 마주치는 바람에 우물에서 애완동물 기니피그가 들어있는 가방을 잃어버린다. 버질은 애완동물 ‘걸리버’를 구하기 위해 우물 안으로 들어가지만 그 안에 갇히고 만다. 겁에 질린 버질은 온갖 상상을 하며 버텨보지만 서서히 지친다.
마침 이상한 예감이 든 카오리는 여동생 겐, 친구 발렌시아와 함께 숲으로 향한다. 그러면서 전혀 마주칠 것 같지 않았던 버질, 쳇, 카오리, 발렌시아가 우물을 중심으로 서로에게 얽혀 든다. 부끄럼 많고 체격 작은 아시아계 버질이 덩치 큰 백인 쳇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설정은 필리핀계 미국인인 작가가 본인의 경험을 버질에게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야기는 무겁거나 우울하지 않다. 모든 것을 품어주는 할머니의 다정함, 엉뚱하지만 의리 있는 카오리의 재치, 영리하고 고집 센 발렌시아의 용기 등이 어우러져 매우 생동감 있고 다채롭게 펼쳐진다. 2018년 뉴베리 대상 수상작이다. 이 상은 미국도서관협회가 1922년부터 매년 시상하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이다.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나는 버질 같은 아이들을 위해 글을 씁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 아이들이었고, 지금도 그러니까요”라고 말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