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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피 흘리지 않는 전쟁’



인민해방군의 6·25 참전을 결정한 중국의 마오쩌둥이 이런 말을 했다. “피 흘리는 정치가 전쟁이고,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이 정치다.” 그보다 훨씬 전 1820년대 “전쟁은 정치적 행위일 뿐 아니라 진정한 정치적 수단이고 정치적 접촉의 연속이며 정치적 접촉을 다른 수단으로 실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한 건 칼 폰 클라우제비츠다. 프로이센 장군이자 군사 사상가인 그가 나폴레옹 전쟁을 겪고 나서 쓴 전쟁론은 군사이론서의 고전이다. 전쟁과 정치의 본질과 상관관계를 이렇게 간결하고 명쾌하게 설명한 말들이 또 있을까 싶다.

종전선언이란 단어가 이번 주 국제 다자외교의 중심 유엔총회에서 공식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쟁 종식이 평화체제로 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역설하고,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논의됐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특별한 편지’를 긍정적으로 언급했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조만간 평양에 간다. 기술적으로 65년 동안 끝나지 않은 ‘피 흘리는 정치인 전쟁’ 상태를 ‘피 흘리지 않는 전쟁인 정치’ 상태로 돌려놓는 가시적 행위가 시작된 것이다.

국내에선 남남갈등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종전선언을 상호 신뢰 제고와 원활한 비핵화 진행을 위한 정치적 선언으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고, 종전선언이 되면 마치 유엔사가 해체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쪽도 있다. 관련국들이 생각하는 종전선언의 개념과 포괄하는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명확히 합의되지 않았다. 그러니 앞으로도 변수는 많다. 하지만 종전선언을 둘러싸고 관련국들이 안보와 지정학적 이익, 경제적 이익까지 이해득실을 분주히 따지기 시작한 건 분명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종전선언에 강력히 관여하길 원했던 중국은 슬쩍 빠져 있고, 일본은 북·일 정상회담을 거론한다.

마지막 분단국가의 전쟁 종식이라는 거대 담론이지만, 현실에선 뭐가 우리에게 이익인가에 무게가 더 있다. 바야흐로 거대한 체스판의 게임이 시작된 것 같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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