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공을 넘겨받았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한은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기준금리 인상 ‘깜빡이’를 이미 켜 뒀지만 경기와 고용·물가 변수를 고민하다 막다른 길에 몰린 형국이다. 한은의 기본적인 시각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은 이제 ‘변수’가 아닌 ‘상수’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주열(사진) 한은 총재는 27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기준금리를 25bp(0.25% 포인트) 인상했는데, 이미 시장에서 예견된 것이다. 오늘 밝힌 향후 금리 전망도 시장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미 간 금리격차가 0.75% 포인트까지 벌어진 것만 가지고 1차 방정식을 풀듯 섣불리 반응할 수 없다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지난 3월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역전된 이후 예상과 달리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사태가 발생하지 않은 점을 감안할 때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직접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보다는 미국의 긴축 통화정책에 따른 불안이 아르헨티나 인도 등 취약 신흥국을 통해 확대되면서 한국을 간접 영향권으로 끌어들일 가능성에 더 촉각을 세우는 분위기다.
한은 입장에서는 기준금리 인상 시 성장률·물가 등 경기지표와 함께 가계부채 누적 등 금융안정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나라 밖으로는 커져가는 미·중 무역전쟁 불확실성도 따져봐야 한다. 이 총재는 “거시경제 상황, 그리고 우리 금융 불균형의 축적 가능성 등을 감안할 때 통화정책 완화의 정도를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실제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대내외 변수가 그만큼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기준금리를 올린 뒤 추가 인상 신호를 보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시간을 끌었다. 그 결과 ‘다음 달 또는 11월 인상’ ‘연내 인상 포기’라는 선택의 기로에 봉착하게 됐다. 이 총재는 다음 달에 있을 금융통화위원회까지 3주라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여러 변수를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다음 달 인상도 녹록지 않다. 한은은 다음 달 수정경제전망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현재 2.9%)를 낮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동시에 기준금리를 올리면 경기를 외면했다는 비난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부동산시장 과열을 이유로 국무총리가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하는 발언까지 내놓은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정부의 말 한마디에 바로 움직였다는 비판도 감수해야 한다. 한은 입장에선 갖가지 변수와 암초를 돌파할 합리적 판단과 절묘한 시점 선택이 절실하다.
이동훈 선임기자 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