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한마당

[한마당-김준엽] ‘하루 1달러’의 속임수



애플은 올해 처음으로 “아이폰이 비싸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전에도 아이폰은 스마트폰 중 가장 비쌌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지난해 아이폰X도 고가 논란이 있었는데 살 사람은 군말 없이 샀다. 반면 올해는 공개된 날부터 가격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미국 IT 매체들은 아이폰Xs 리뷰 기사마다 단점으로 비싼 가격을 꼽는다. 논란이 이어지자 애플 최고경영자(CEO) 팀 쿡은 “하루 1달러 수준”이라며 비싸지 않다고 항변했다. 아이폰 가격이 1000달러에 육박하지만 보통 통신사와 약정을 맺고 기기를 할부로 사기 때문에 하루 단위로 쪼개 보면 1달러 수준의 가격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가격 프레임은 주로 비싼 제품을 싸 보이게 하는 데 쓰이는 방법이다. 총액은 똑같아도 눈앞에 보이는 가격을 얼마로 하느냐에 따라 비싸 보이기도 싸 보이기도 한다. ‘1년 사용료 5만2000원’과 ‘1년간 일주일에 1000원’은 절대적인 비용은 같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선 완전히 다르게 느낄 수 있다. 이는 경제학에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정을 받았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어떤 프레임을 설정하느냐에 따라 경제적인 선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그동안 애플에 열광하고 비싼 돈을 내면서 아이폰을 산 이유는 혁신 때문이었다. 가격이 비싸 보이지 않게 프레임을 짜는 전략 때문이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는 1984년 매킨토시 출시를 앞두고 당시 애플 CEO였던 존 스컬리와 충돌했다. 잡스는 1995달러에 팔고 싶어 했지만 스컬리는 500달러 높은 2495달러를 원했다. 마진이 적다는 이유에서였다. 잡스는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이고 싶은 거지 이윤을 짜내고 싶은 게 아니다”고 맞섰다.

잡스 사후 애플을 책임지는 쿡은 ‘관리의 달인’이라는 별명답게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애플의 시가총액은 1조 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혁신적인 기업이란 애플의 이미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높은 가격에 대한 저항에도 올해 아이폰 판매는 여전히 순조로울 가능성이 높다. 10년 이상 애플 생태계에 적응한 사용자들이 쉽게 떠나가긴 어렵다. 달라진 게 있다면 과거에는 열광하면서 샀던 아이폰을 이제는 불만을 가진 채 사는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어쩌면 애플의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 시작될 수도 있다.

김준엽 차장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