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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원래 주인은 山·江·川… 도시는 손님이죠”

이기옥 서울건축문화제 총감독이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앞 개인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다가 사진기자의 요청으로 잠깐 포즈를 잡았다. 이 총감독은 “서울처럼 도시 안에 산이 있고, 산 안에 도시가 있는 경우는 외국 어디에도 없다”면서 “서울의 모뉴멘트는 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서영희 기자


산들은 서울을 담고 있는 그릇 그린벨트 푸는 건 그릇 깨는 일
시민들 건축 의식 올라가야 도시·건축 수준도 같이 올라가
개발시대 통과하며 자연 훼손 지금은 잃어버린 것 생각할 때


-서울건축문화제는 왜 하는 겁니까?

“시민들에게 건축을 알리기 위해서 하는 거죠.”

-시민들에게 왜 건축을 알려야 하죠? 시민들이 건축을 왜 알아야 합니까?

“예?”

너무 직접적인 질문이었을까. 이기옥(54·필립건축사사무소 대표) 서울건축문화제 총감독은 말문이 막히는 듯 했다. 그러나 곧 “건축은 건축가 스스로 시작할 수 없다”는 말로 설명을 시작했다.

“건축은 누군가 설계를 의뢰하면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건축가 혼자 설계를 시작할 순 없어요. 건축주는 공공기관이나 기업체도 있지만 대부분 일반 시민들입니다. 클라이언트인 시민들의 건축에 대한 의식이 올라가야 건축의 수준도 같이 올라갑니다. 건축주의 동의나 교감 없이 건축가 맘대로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건축에서 건축주의 역할이 반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건축은 만들어지고 나면 도시의 일부가 됩니다. 그러니까 좋은 건축, 좋은 도시는 시민과 건축가가 같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죠.”

올해 서울건축문화제의 주제는 ‘한양山川(산천) 서울江山(강산)’이다. 서울의 산과 강, 개천을 다룬다. 이 총감독은 “서울이라는 도시와 건축이 이루어진 배경을 좀 알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형성과 전개는 산들과 한강, 지천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서울은 그 어느 도시에 비해서도 지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한양이 여기에 입지를 정한 것도 산 때문이고, 지금 서울의 경계를 만든 것도 산입니다. 또 산과 강, 지천이 구(區)와 생활권의 경계를 만들었죠. 도시와 건축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산과 강, 천 사이에 도시가 들어선 것입니다. 서울의 원래 주인은 자연이고, 도시는 손님인 것이죠.”

올해 서울건축문화제는 서울의 원주인이 누구인지 환기시키는데 집중한다. 서울의 지형을 3D 영상으로 만들어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서울의 산과 강, 천을 보여주려고 한다”면서 “서울이 거대도시이긴 하지만 위에서 부감으로 보면 도시는 작고 산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도시나 건물이 대단한 줄 알지만 산과 강 사이에 우리가 비집고 들어가 살고 있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다”고 얘기했다.

-왜 지금 우리가 서울의 산천과 강산을 들여다봐야 합니까?

“서울에는 산과 강, 천이 있었고 우리가 거기에 기대서 살아왔다는 걸 의식하면 도시와 건축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과 강, 천은 그릇입니다. 도시와 건축을 있게 한 그릇. 그 안에 도시, 건축, 사람이 담기는 것이죠. 그릇을 의식한다는 건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 고민해 보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지금 서울에서 도시와 자연의 관계가 망가졌다고 보십니까?

“개발시대를 통과하면서 많이 훼손됐죠. 한강과 지천은 주변으로 고속도로가 깔리고 아파트가 들어서 진입이 어려워졌습니다. 또 외곽도로들이 변방의 산들을 우리 생활권에서 분리시켰습니다. 속도와 개발은 그 시대의 당위성이었겠지만 그 때문에 잃어버린 게 많죠. 지금 우리는 어쩌면 처음으로,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기를 맞고 있는 것 같아요.”

지난달 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앞 이 총감독의 개인 사무실에서 시작된 얘기는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서울의 산과 강, 천을 주제로 한 얘기는 자연스레 그린벨트 문제로도 넘어갔다.

“도시 안에 산들이 있고, 산 속에 도시가 있는 게 서울입니다. 한양도 산에 휩싸여 있었고, 지금 서울도 산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산은 서울의 그릇입니다. 산들과 천들이 남아있어서 그나마 도시를 숨 쉴 수 있게 했고, 역사와 기억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 산이 없었다면 벌써 다 밀어버리고 아파트촌으로 만들었을 겁니다. 그린벨트를 푸는 건 서울이라는 그릇을 깨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총감독은 상업 건물이나 아파트 설계를 오래 하다가 40대 후반에야 개인 작품을 선보였다. 첫 작품인 지노하우스(점포주택)와 두 번째 작품인 바라움(단독주택)으로 2012년, 2013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건축가협회에서 젊은건축가위원장을 맡으면서 공적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2년간 일했고 서울건축문화제 큐레이터, 대한민국건축문화제 전시기획총괄 등을 거쳐 2017년부터 서울건축문화제 총감독을 맡고 있다.

그는 “건설공화국, 아파트공화국으로 불려온 시대의 끝자락에 우리가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저성장과 저개발이 오히려 제대로 된 건축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건설의 시대를 대변하는 게 아파트였죠. 아파트 위주라는 건 건축의 다양성이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아파트가 포화 상태로 들어갔고, 자투리땅을 이용한 다양한 소형 건축물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건축가들이 개인주택 설계를 거의 안 했는데 지금은 조그만 집들을 정성껏 설계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새로운 건축 개념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뭐 대단한 게 나오는 게 아니더라도 깊이 있는 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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