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강경파 정조준 北, 국제사회에 종전선언 이슈화[이슈분석]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북한이 올해 유엔총회장에서 미국의 체제 보장 없는 선제적·일방적 비핵화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10월 초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을 앞두고 비핵화 문제에 있어 일방적인 양보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북한은 그러면서도 지난해와 달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비난은 일절 하지 않아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아울러 국제사회에 종전선언 필요성을 어필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 없이는 우리 국가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핵무장을 해체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핵화 의지는 확고부동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우리로 하여금 충분한 신뢰감을 가지게 할 때에만 실현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리 외무상은 15분가량의 연설에서 6·12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15차례나 언급하며 미국이 합의 이행에 나서지 않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북한의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지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약속 등을 들면서 “이에 대한 미국의 상응한 화답을 우리는 보지 못했다”며 “반대로 미국은 ‘선 비핵화’만 주장하며 제재 압박 도수를 높이고 있고, 심지어 종전선언 발표까지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리 외무상은 일부 비판적인 대목에도 불구하고 지난해에 비해선 상당히 정제된 발언으로 연설을 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을 ‘투전꾼’ ‘과대망상이 겹친 정신이상자’라고 비난한 그는 올해는 트럼프 대통령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의 정치적 반대파가 행정부에 강박해 협상이 진척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고 있다”며 대북 강경파만 겨냥했다.

북한도 연설의 톤이 약해진 것임을 부각시켰다. 김성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기자들이 연설 내용이 좀 세다고 지적하자 “신뢰 구축을 호소한 내용인데 그게 왜 센 연설이냐”고 진화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리 외무상의 연설이 트럼프 행정부가 아닌 국제사회를 우선 겨냥한 것으로 분석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30일 “리 외무상이 종전선언과 제재 해제 문제를 놓고 협상의 주도권을 갖기 위해 국제사회에 호소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종의 여론전이라는 뜻이다.

일단 협상의 끈을 유지하겠다는 북한의 속내가 드러난 만큼 곧 재개될 북·미 고위급 협상에서 북한은 최대한 성의를 다해 대화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리 외무상의 연설이 부드러워진 점을 들어 북·미 간에 종전선언을 둘러싼 이견이 일부 좁혀진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종전선언을 통해 명분만 쌓게 되면 비핵화에 상당한 속도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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