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별은 무수히 많지만 달은 하나뿐이다. 그러나 화가 구철회(1971∼)의 작품에서 달은 여러 개다. ‘멜랑콜리아’라는 제목의 이 그림도 3개의 달이 등장한다. 저 멀리 작은 달에서부터 분화구를 드러낸 달, 그리고 화폭 중앙을 뒤덮은 커다란 달까지 각양각색이다. 전면부의 흰 달은 달무리까지 더해지며 감상자에게 달려들 것만 같다. 둥근달 아래 도시는 온통 폐허다. 건물들은 기둥과 담벼락만 남긴 채 모두 파괴돼 쇠락한 고대 도시처럼 을씨년스럽다. 산등성 아래에선 아직도 전쟁 중인지 붉은빛이 감돈다. 인간은 간데없고, 폐허에 둥근달만 휘영청 밝다. 그렇다면 달이 3개인 까닭은 무엇일까? 화가는 답한다. “모두들 달을 푸근한 것으로, 기원의 대상으로 여긴다. 보름달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 달 아래 현대인의 삶은 어떤가? 결코 녹록지 않다. 그래서 달을 역설적으로 그려보고 싶었다”고.
데뷔 이래 어둡고 초현실적인 회화를 선보여 왔던 구철회는 음산한 풍경을 통해 우리의 팍팍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모든 게 번쩍번쩍 풍성하지만 우울과 절망을 호소하는 도시인이 느는 데 주목한 것. ‘도대체 이럴 수가 없는데, 이건 뭘까’ 하고 되묻게 하는 그림은 우리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을 환기시킨다. 밝은 달을 그리되 두려움도 표현함으로써 도시의 두 얼굴을, 인간의 양면을 목도하게 한다. ‘너, 외롭고 힘들잖아’라며 옆구리를 쿡 찌르는 음산한 풍경은 ‘사실 너뿐 아니리 우리 모두 그렇다’고 속삭이는 듯하다.
남들이 잘 보려 하지 않는 세계를 독특하게 형상화해 온 구철회는 어느새 개인전을 15회나 가졌고, 24일 예술의전당에서 개막하는 ‘구상대제전’에도 신작 15점을 발표한다. 작품의 주제는 역시 우울과 그리움이다.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