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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이흥우] 김정은 국회연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1963년 8월 28일. 미국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워싱턴DC 링컨기념관 앞에서 20여만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행한 연설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준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로 시작해 ‘우리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we are free at last)’로 마무리하는 이 연설은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로워야 한다는 절대적 진리를 일깨운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진리가 50년 전 미국에선 통하지 않았다. 이 연설을 기폭제로 흑인 민권운동의 거센 불길이 미국 전역에서 활활 타올랐고, 백인과 흑인을 가르는 견고했던 차별의 벽이 하나둘씩 무너졌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존 F 케네디의 베를린 연설과 함께 이 연설이 연설의 전범으로 꼽히는 까닭이다.

지난달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 후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북한 주민들을 상대로 대중연설을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광경을 15만 평양시민이 지켜봤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는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티를 빼면 평양 시민들은 문 대통령 연설을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나 충격으로 받아들였을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부인 리설주 여사는 백두산 천지에 올라 “연설이 감동적”이라고 문 대통령에게 인사를 건넸다. 평양 시민들의 감상 또한 그런지 몹시 궁금하다. ‘남북은 하나’라는 공감대만 심어줬어도 능라도 연설은 대성공이다.

정치권에서 김 위원장 서울 답방 시 국회 연설을 하도록 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은 물론 보수 진영의 하태경 의원까지 적극적이다. 김 위원장이 연설을 하겠다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하는 게 자연스럽다. 북한은 허용했는데 남측이 난색을 표하면 우리만 옹졸한 사람이 된다. 북한처럼 15만명을 동원할 수 없으니 연설의 격이나 경호 문제를 고려할 때 장소는 국회가 제격이다. 서울에 와서 보고 느낀 점을 비롯해 남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방남 소감을 김 위원장으로부터 직접 듣고 싶다.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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