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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명 인터뷰] 찬란한 인생 2막으로… “치열하게 또 촌스럽게”

마흔을 훌쩍 넘겨 전성기를 맞은 배우 유재명. 그는 “일상이 되게 심심하다. 집에서 청소하고 빨래하고 TV 보다 술 한잔 하고 자는 게 전부다. 그런데 연기를 할 때면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내가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김지훈 기자
 
유재명이 처음 얼굴을 알린 ‘응답하라 1988’, 극찬을 받은 ‘비밀의 숲’, 사명감 넘치는 의사 역을 소화한 ‘라이프’, 비교적 가벼운 연기를 선보인 ‘명당’의 출연 모습(위 사진부터). tvN, JTBC,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쉼 없는 활약을 이어가는 배우 유재명. 차기작은 이성민과 호흡을 맞추는 범죄 액션 영화 ‘비스트’(가제)다. 김지훈 기자


스무 살 때 본 연극 한 편이 인생을 뒤흔들었다. 생물 교사를 꿈꾸던 청년은 그렇게 배우가 되었다. 그저 연기가 좋아, 20여년 세월을 열렬히도 매달렸다. 대기만성이라 했던가. 유재명(45)은 지금, 더 높은 곳을 향해 비상하고 있다.

대중의 눈에 든 지는 이제 고작 3년. 드라마 ‘응답하라 1988’(tvN·2015∼2016)의 동룡이(이동휘) 아버지 역으로 눈도장을 찍었다. 다작(多作) 행보를 이어가던 차에 ‘인생작’을 만났다. ‘비밀의 숲’(tvN·2017)에서 정의구현을 위해 ‘큰 그림’을 그려 나가는 이창준 검사 역을 맡아 ‘창크나이트(창준+다크나이트)’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최근 3년은 그의 인생 중 가장 극적인 시절이었을 테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유재명은 “정신없이 살고 있다”고 입을 뗐다. 그는 “얼떨떨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행복한 걸 넘어서, 내 인생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인생을 트랙 10바퀴 도는 레이스에 비유한다면, 저는 지금 5바퀴째에 다다르기 100m 전쯤에 있는 것 같아요. 이 100m를 통과하고 나면 ‘아, 절반은 왔구나’ 안도감이 들겠죠. 그 기점이 되는 작품이 ‘명당’입니다.”

추석 시즌 개봉한 영화 ‘명당’(감독 박희곤)에서 유재명은 부패권력(백윤식)에 맞서는 지관 박재상(조승우)을 돕는 지기 구용식 역을 맡았다. 묵직한 흐름에 쉼표를 찍어주는 감초 역할.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확고한 신념을 지닌 인물이란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용식 캐릭터와 본인이 닮은 지점은 ‘치열함’이라고 했다. 유재명은 “난 되게 심심한 사람이다. 잘하는 것 말고는 신경을 별로 안 쓰는 스타일이다. 수완이 좋지도, 계산이 빠르지도 않다. 한데, 용식처럼 가슴은 뜨거운 것 같다”고 얘기했다.

실제로 그의 지난날은 뜨거운 열정으로 치환된다. 부산대 재학 시절 ‘극예술연구회’를 만들어 선후배들과 연극을 올렸고, 이후에는 ‘배관공(배우 관객 그리고 공간)’이라는 극단을 꾸려 연출과 제작까지 했다. 작품 수는 어마어마했다. 15년간 무려 150여편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극도의 무기력감이 밀려드는 ‘번아웃 증후군’이 찾아왔다. 서른다섯 무렵이었다.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엔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막상 쉬진 못했다. 어쩌다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연기 의욕이 되살아났다.

“과거의 저는 실수투성이였고, 욕심쟁이였어요. 한 가지 자부하는 건 열심히 살았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연기를 쉰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제의가 들어오면 그 작품의 장점부터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거든요. 매번 놓치기가 아까워서 다작을 하게 된 것 같아요(웃음).”

최근 유독 바빴다. 지난달 종영한 ‘라이프’(JTBC)로 시청자를 만났고, ‘명당’에 앞서 독립영화 ‘죄 많은 소녀’와 ‘봄이가도’를 잇달아 선보였다. 이제는 시사회 때마다 찾아주는 팬들도 생겼다. 유명세는 아직 어색하지만, 마음가짐만큼은 달라지고 있다.

“그 순수한 팬심이 굉장히 감사하더라고요. 단순히 좋아하는 걸 넘어서, 유재명이라는 배우가 걸어온 여정을 이해해주신다는 느낌이 들어요. ‘당신의 연기를 보면 위로가 돼요’라는 마음을 보내주시는데, 그게 참 좋더라고요.”

그는 진정한 인생 2막을 앞두고 있다. 5년간 교제해 온 띠동갑 연극배우 여자친구와 오는 21일 결혼식을 올린다. “제 결혼에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실 줄 몰랐어요. 부끄럽네요. 그냥 결혼하는 거죠 뭐. 잘 살겠습니다(웃음). 새로운 단계에 대한 구상도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좀 더 여유를 가지고요.”

배우로서 지향하는 바는 뚜렷하다. 유재명은 “역할마다 그 인물의 숨을 찾으려는 편이다.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애환과 희망, 외로움 같은 것을 표현해내고 싶은 욕망이 크다”고 털어놨다. 이어 “어떤 순간에도 겸손을 잃지 않으려 한다. 언제나 나는 치열하게 연기하는, 촌스러운 배우로 남고 싶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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