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쇼핑을 하다 보면 어딘지 수상한 때가 있다. 판매자가 같은 쇼핑몰에서 파는 상품의 가격이 갑자기 오르거나 내리는 경우다. 인터넷에서 살 물건을 검색해 놓고 ‘바쁜 일 끝내고 사야지’ 했는데 몇 시간 있다 결제하려고 보면 가격이 올라 있다. 괜찮은 가격이라 생각해 주문했는데 다음날 보니 더 내려가 있다. 최저가는 생각보다 자주 바뀐다. 내려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올라가기도 한다. 비싼 물건일수록 가격변동 폭이 크다. 몇 천원, 몇 만원짜리는 변화가 미미한 편이지만 가전제품처럼 100만원이 넘는 물건은 금세 몇 만원씩 오른다. 항공권 예약 사이트에 노출되는 최저가도 대표적인 ‘고무줄 가격’이다.
조금 전 산 물건 값이 갑자기 내리거나, 결제하려던 최저가가 기습적으로 오르는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소비자는 손해 봤다는 생각을 넘어 농락당한 기분을 느낀다. 소비자들은 가격이 실시간으로 오르내리는 연유를 알 수 없다. 판매자들은 “소비자 선호(수요)와 재고 상황(공급)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할 뿐이다. 그런데 수십 가지 상품을 취급하는 판매자가 그 많은 물건의 시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살피며 가격을 수시로 바꿔 입력하는 일이 가능할까. 게다가 판매자들은 대개 여러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해 있다. 감시해야 할 경쟁자는 한두 명이 아니다. 이쯤 되면 가격을 조정하는 게 사람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로봇들의 가격 경쟁
실제로 적잖은 온라인 판매자가 자동 가격 설정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라인에 공개된 동종 상품의 가격 정보를 모니터링하며 자사 상품 가격을 조정하는 소프트웨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IBM의 ‘디멘드테크 가격 최적화 소프트웨어’다. 국내에서도 가격 설정 프로그램이 활용되고 있다. 주요 가격 비교 사이트에서 검색되는 실시간 가격 정보를 토대로 상품 가격을 자동으로 조정해준다. 주로 최저가를 파악해 그보다 낮은 가격으로 설정한다. 판매자는 가격 변동 조건과 시간 등을 미리 입력해둘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가격 비교 사이트가 성행하기 시작한 10여년 전부터 활용됐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프로그램의 활용이 확대되면서 물건 값이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러 업체의 물건 값이 동시에 오를 가능성도 높다. 전문가들은 프로그램이 고도화할수록 가격 경쟁이 약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마진을 남겨야 하는 업체 입장에서 치열한 가격 경쟁은 제 살 깎아먹기다. 프로그램들은 일정 가격을 유지하며 업체들이 공생하는 쪽으로 타협할 수 있다. 이 경우 여러 업체의 상품 가격이 고정되거나 동시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담합이다. 이렇게 소프트웨어에 의한 담합은 ‘디지털 카르텔’ ‘테크노 카르텔’ ‘알고리즘 담합’ ‘디지털 담합’ 등으로 불린다.
온라인 판매 시장은 경쟁 대상이 워낙 많아 담합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견해가 있지만,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말이 달라진다. 전통적 담합은 소수 사업자가 경쟁하는 과점(寡占)시장에서 주로 발생한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시장 상황을 파악해 가격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이뤄지는 디지털 담합은 시장 참여자가 아무리 많아도 가능하다. 이런 담합에 대한 각국 공정거래 당국의 문제의식은 높아지고 있지만 대응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규제를 위한 관건은 가격 설정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사업자가 담합이라는 결과를 애초에 예상하거나 의도했느냐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가격 설정 소프트웨어가 경쟁 판매자끼리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담합을 인식한 상태로 이뤄지는 묵시적 담합의 영역을 확대할 여지가 크다고 본다.
“디지털 담합도 위법” 인정 추세
디지털 담합에 대한 규제는 해외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법무부는 2015년 4월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 포스터를 파는 ‘포스터 레볼루션’ 대표 데이비드 톱킨스를 가격 담합 혐의로 캘리포니아 북부지법에 제소했다. 톱킨스는 2013년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경쟁 사업자들과 일부 포스터 가격을 고정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위해 가격 설정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공통적으로 사용했다. 소프트웨어는 업체들이 합의한 대로 가격을 설정해 경쟁 상황 때보다 비싸게 팔도록 작동했다. 톱킨스는 조사 과정에서 벌금 2만 달러를 내는 선에서 가격 담합 혐의를 인정하고 조사에 협조키로 했다. 당시 미 법무부 반(反)독점국 빌 배어 법무차관보는 “복잡한 가격 알고리즘을 이용한 인터넷을 비롯해 의심스러운 지대에서 벌어지는 반경쟁적 행위를 결코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차량 공유 업체 ‘우버’도 가격 설정 소프트웨어를 통해 디지털 담합을 조장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2016년 3월 미국 뉴욕연방지법은 우버가 운전기사들에게 동일한 가격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도록 해 묵시적 담합을 조장했다고 판단했다. 우버는 승객과 운전사가 수급 상황에 따라 요금이 자동 조정되는 탄력요금제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크리스마스이브인 12월 24일이나 연말인 12월 31일 같은 극성수기에 우버 이용 가격은 6∼7배 치솟는다. 우버는 알고리즘이 수요·공급 변동에 따라 가격을 자동 결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우버의 동일 가격 사용이 문제가 되는 건 운전기사들이 우버에 직접 고용되지 않은 독립사업자이기 때문이다. 법원은 경쟁을 통해 요금을 매겨야 하는 운전사들이 우버의 알고리즘을 사용해 동일 요금을 받은 것을 담합이라고 봤다.
이보다 앞선 2012년 6월에는 리투아니아 당국이 온라인 여행예약 사이트 ‘에투라스(E-turas)’를 운영하는 에투라스 UAB와 에투라스 플랫폼을 이용하는 여행사 30곳에 과징금 150만 유로를 부과했다. 소비자들이 플랫폼을 통해 예약할 때 적용되는 할인율을 업체들이 동일하게 제한했다는 혐의다. 에투라스는 업체들에 최대 할인율을 3%로 공지했다. 당국은 여행사들이 이의 제기나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을 암묵적 동의로 봤다. 2016년 5월 리투아니아 최고행정법원도 에투라스의 할인율 제한 정책을 수용하고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은 여행사들이 담합 행위에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인하보다 빠른 가격 인상
국내 온라인 유통업체들의 가격 담합 가능성과 관련해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논문이 계명대 경영정보학과 박사과정 이지은씨 등이 학술지에 발표한 ‘온라인 판매자들의 가격 조정에 관한 연구’다. 연구자들은 판매자 15명이 판매하는 30개 제품 대상으로 가격 변동을 조사했다. 그 결과 판매자들은 서로 비슷한 시기에 가격을 조정했다. 가격은 주 단위보다 일 단위로 더 자주 바뀌었다. 가격 내리는 경우가 상당수였지만 가격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가격 인상은 인하 때보다 더 빠르게 이뤄지고 변동 폭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가격 설정 알고리즘이 복잡해질수록 디지털 담합에 대한 규제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업체 간 담합을 위한 의견교환이나 명시적 합의가 없고, 담합 의도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아서다. 제도적 공백이 길어질수록 기업들이 알고리즘을 활용해 묵시적 담합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응책으로는 알고리즘 감사, 알고리즘에 대한 법적 지위 부여 등이 거론된다. 알고리즘 감사는 알고리즘 작동 방식과 그 영향을 당국이 검증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영업기밀과 지적재산권 침해 등의 우려가 있다. 알고리즘에 대한 법적 지위 부여는 기업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유럽의회는 2017년 1월 로봇에 대해 ‘전자인’이라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제안을 결의하기도 했다. 유럽연합(EU) 마가렛 베스타거는 “담합 가능성이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거나 도입하는 것도 담합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법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