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나무늘보의 위상을 높이려고 나무늘보협회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협회가 존재할까 미심쩍지만 책을 읽으면 그의 곡진한 나무늘보 사랑을 실감할 수 있으니 믿음이 갈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 그는 지구촌의 수많은 동물 가운데 나무늘보에 마음을 뺏긴 것일까. ‘오해의 동물원’은 몇몇 동물에 대한 세상의 엉터리 잡설을 통렬하게 비판한 작품으로, 나무늘보에 관한 이야기만 간추려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넘겨짚는 나무늘보는 게으르고 느려터진 “자연계의 백수건달”이다. 나무늘보의 영어명인 ‘슬로스(Sloth)’엔 ‘나태’ ‘태만’ 같은 부정적인 뜻이 담겨 있다. 특히 서양인들의 시선이 호의적이지 않은데, 실제로 그 옛날 나무늘보를 처음 마주한 이들은 경멸 섞인 평가를 내렸다고 한다. 가령 16세기 스페인의 한 탐험가는 “이렇게 못나고 쓸모없는 동물을 본 적이 없다”고 했고, 19세기 영국의 과학자는 “잘못 설계된 생물”이라고 평가했다.
약자를 솎아내는 진화의 메커니즘에 따르자면 날렵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이 동물은 진작 멸종됐어야 했다. 하지만 나무늘보는 현재 지구에서 “가장 수적으로 풍부한 대형 포유류” 중 하나다. 6400만년 넘게 생존에 성공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저자는 말한다. “나무늘보는 결함투성이 떨거지”가 아니라고. 예컨대 나무늘보의 털가죽은 투명 망토 같은 역할을 하니 열대 우림에 이 동물이 숨어 있으면 찾기가 쉽지 않다. 나무늘보의 전매특허인 특유의 나태함도 생존 비법이다. “봄바람처럼 감미롭고 조용하고 느리게” 움직이니 천적인 독수리도 나무늘보를 발견하지 못할 때가 많다.
‘오해의 동물원’에는 이렇듯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저자는 영국에서 자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어쩌다 각인된 부정적 이미지 탓에 오랫동안 온갖 수모를 감당하고 있는 동물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한다. 인간의 기준에서 볼 땐 엉망진창인 일부 동물들의 실체까지도 낱낱이 까발린다.
저자가 감싸고도는 동물 중 하나는 하이에나다. 하이에나는 야비한 폭력배이자 비겁한 겁쟁이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특히 점박이하이에나는 “선구적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점박이하이에나 암컷의 생식기는 음핵만 20㎝나 되는데 겉모양이 마치 수컷의 생식기와 유사하다. 심지어 발기까지 한다. 생식기가 특이하게 생긴 탓에 수컷이 암컷과 교미하려면 암컷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암컷이 막강한 힘을 가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암컷의 생식관은 너무 길어서 정자가 ‘목적지’까지 가는 데 한참 걸린다. 관계를 가진 뒤 수틀리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암컷은 소변을 통해 깔끔하게 수컷의 ‘흔적’을 지워버릴 수 있다(저자는 이런 설명을 늘어놓은 뒤 “언니 대단해요!”라고 치켜세운다).
하이에나가 죽은 동물의 시체를 탐하는 것도 나쁘게 봐선 안 된다. 하이에나는 “아프리카 평원의 쓰레기 수거 차량”이다. 동물 세계에 질병이 속수무책 퍼지는 걸 막아준다. 하이에나가 사자의 ‘전리품’을 훔쳐 먹는다는 것도 오해다. 사자가 오히려 하이에나가 획득한 고기를 더 많이 훔친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방증한다. 하이에나는 사회성도 뛰어나 무리가 일심으로 단결해 문제를 해결하는 실험에서 영특하기로 소문난 침팬지를 이기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 덕분에 외려 사랑받게 된 동물로는 무엇이 있을까. 저자가 도마에 올리는 동물 중 하나는 펭귄이다. 겉모습만 보면 펭귄은 연미복을 입고 아장아장 걷는 아기처럼 보인다. 많은 이들이 펭귄을 사랑한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인간의 도덕률과는 거리가 멀다. “대중이 인식하는 펭귄의 이미지 가운데 사실인 게 별로 없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이들의 성생활은 “가장 진보적인 단체에서조차 용납하기 힘든 수준”이다.
펭귄의 세계에서 일부종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황제펭귄은 85%가 매년 다른 배우자를 선택한다. 훔볼트펭귄 암컷 가운데 3분의 1은 남편 몰래 외도를 감행한다. 1915년 ‘출판용 아님’이라는 딱지가 붙어 세상에 나온 한 논문엔 펭귄이 동료 펭귄을 집단으로 강간했다거나 소아 성애 성향을 보인다는 끔찍한 내용이 실려 있었다. 이 논문을 펴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펭귄이 저지르지 못할 것 같은 범죄는 없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 사례를 통해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결론은 동물의 외양이나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에 홀려 동물의 세계를 의인화한 경향이 인간의 머릿속에 ‘오해의 동물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커다란 깨달음을 주는 건 아니지만 시종일관 낄낄거리며 책장을 넘기게 되는 흥미진진한 교양서다. 세상엔 과학사의 우스꽝스러운 일화나 동물의 진귀한 생태를 전하는 책이 널렸지만, 이만큼 유머러스한 작품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