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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궁핍 속에서 행복을 그린 화가

모드 루이스가 보드에 유화물감으로 그린 ‘모드와 에버릿’. 가난한 일용직 노동자 에버릿 루이스와 결혼한 모드는 그의 아내가 된 것을 자랑스러워했고 남편을 그림 속에 자주 등장시켰다. 남해의봄날 제공






랜스 울러버 글, 밥 브룩스 사진, 모드 루이스 그림/ 박상현 옮김, 남해의봄날, 192쪽, 1만7000원

이 그림은 그늘 하나 없이 밝고 천진하다. 태어날 때부터 등과 손이 굽었던 이가 그린 것들이다. ‘곱사등이’ ‘절뚝발이’라는 아이들의 놀림에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그는 정식 미술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신간 ‘내 사랑 모드’는 그럼에도 캐나다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민화가가 된 모드 루이스(1903∼1970·사진)의 생애를 기록한 전기이다.

모드는 마구 장인이었던 대장장이 아버지와 피아노 연주를 즐겼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림을 좋아했던 어머니는 모드에게 크리스마스 카드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줬다. 모드는 이때 어머니에게 그림을 배웠다. 모드의 집은 축음기가 있을 정도로 유복했고 가족들과 소풍을 다니던 모드는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부모가 세상을 모두 떠난 1937년 어느 날, 모드는 한 가게에서 이런 광고를 본다. ‘함께 살거나 집안일을 해 줄 여성을 찾습니다.’ 44세 독신남 에버릿 루이스가 붙인 것이었다. 모드는 품팔이 노동자였던 에버릿의 오두막을 찾아갔고 둘은 결혼한다. 오두막의 넓이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3.75m, 4m에 불과했고 에버릿의 머리가 천장에 스칠 만큼 낮았다.

에버릿과의 결혼으로 생활이 궁핍해졌지만 모드는 개의치 않았다. 모드는 오두막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에버릿의 아내란 사실을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나는 여기가 좋아요. 어차피 여행을 좋아하지도 않으니까요. 내 앞에 붓만 하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모드의 얘기다.

모드는 이 오두막을 캔버스 삼아 수선화와 나비 등을 그리기 시작했고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드의 그림이나 카드를 사기 위해 멈췄다. 모드는 그림을 팔아 살림에 보탰고 에버릿은 살림을 했다. “에버릿은 꼬부랑 집에 사는 꼬부랑 할아버지 같았고 모드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녀처럼 보였다.” 모드의 집 근처에 살던 저자 울러버가 기억하는 둘의 모습이다.

모드는 하루 종일 오두막 창가에 앉아 쟁반 위에 보드를 올려놓고 빈 통조림에 물감을 짜서 그림을 그렸다. 저녁에는 에버릿이 구운 빵 조각을 먹고 잠들었다. 모드에겐 유명세보다 친밀감이 중요했다. 나중에 모드는 미국 백악관이 작품을 주문할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그런 것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5달러짜리 그림을 기다리는 고객을 위해 국제 행사 초청을 거절하는 화가였다. “사랑이나 우정 없는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드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모드는 그렇게 30여년간 작은 오두막 창가에서 그림을 그리며 생애를 보냈다.

그럼 이렇게 밝은 그림은 어디에서 왔을까. 모드의 작품은 평범한 즐거움에 대한 허기와 유년기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저자는 본다. 그가 시골 생활의 즐거움을 밝게 그린 것은 그런 즐거움을 누렸기 때문이 아니라 장애와 병으로 집 밖에 거의 나가지 못하고 그런 것을 전혀 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드는 신체장애와 궁핍을 그림을 통해 극복한 작지만 강인한 여성이었다. 모드의 삶과 작품을 통해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행복을 곁에 둘 수 있고 그 행복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모드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기록한 울러버의 글과 쾌청한 날씨 같은 모드의 그림들, 모드의 맑은 눈빛이 담긴 사진들은 책을 보는 내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작품 70여점, 20장가량의 사진을 공들여 매만진 편집자의 손길도 다사롭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2017)로 유명한 남해의봄날 책이다. 샐리 호킨스와 에단 호크 주연으로 지난해 국내에 개봉된 영화 ‘내 사랑’은 모드의 삶을 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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