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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칸타타] 삶이 힘든 그들이 언제든 교회문 열고 들어와 마음의 평안·은혜 얻었으면…

박용숙 주성농인교회 목사가 4일 오후 서울 송파구 법원로에 있는 교회 예배실에서 청각장애인들을 향해 수화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박용숙 목사(뒷줄 오른쪽)와 주성농인교회 성도들이 지난봄 야외예배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주성농인교회 제공
 
2011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코미디언 고 구봉서 장로(가운데 앉아 있는 이)의 전시회에 함께한 박 목사(오른쪽 두 번째). 박 목사는 생전 구 장로에게 서예를 가르쳤다. 주성농인교회 제공


서울 송파구 법원로8길 주성농인교회 박용숙(61·여) 목사는 ‘청각장애인들의 대모’로 통한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외길 인생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청각장애인들의 ‘신실한 대변인’이다. 그가 지금까지 전도한 청각장애인은 100여명이다. “우리나라 청각장애인은 35만명으로 추산됩니다. 이 중 기독교인은 7000명(2%)도 채 안 되는 실정이지요. 청각장애인 1명 전도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하나님에게는 한 영혼 한 영혼이 천하보다 중요하답니다.”

그는 ‘건청인’이다. 그러나 청각장애인 성도에게는 ‘성실한 목회자’ 그 이상이다. 그들의 신앙생활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 억울한 사연까지 꼼꼼히 챙기고 있다. 각종 전시회, 찬양집회 등을 통해 받은 수익금, 사례비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사용한다. 또 이잡문화센터(ezob.org)를 설립해 청각장애인에게 무용과 그림을 가르치고 문화선교 활동에 동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누가 그러는데 제가 ‘국내 최초의 여성 건청인 농교회 담임목사’라고 하더군요. 남자들도 힘든 목회사역에 그것도 대화하기 힘든 청각장애인 교인들과 함께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아요. 비록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한없이 기쁘고 감사하답니다.”(호호)

그의 청각장애인 선교와 구제 이야기는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가이자 서예가, 무용가, 복음성가 가수 등 문화예술인으로 활동하다 ‘청각장애인 세계’를 알게 됐다.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예전시회에 청각장애인들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다.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청각장애인들의 딱한 사연을 결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사연을 듣다 눈물을 ‘줄줄’ 흘렸어요. 이후 많은 청각장애인을 만났답니다.”

이후 그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렸다. 수화통역자격증을 취득했고 이를 통해 수화강의를 했다. 또 텔레비전이나 세미나 등 각종 현장에서 수화통역을 맡았다.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몸이 아플 때는 온몸으로 수화를 표현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하나님께 서원한 대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청각장애인 성도의 생활을 챙겨주는 일도 그의 몫이다. 법률·의료·행정·가사 상담이 끊이질 않는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새벽기도를 마치고 졸린 눈으로 일터에 나간 청년 청각장애인이 갑자기 경찰서에 붙잡혀 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부랴부랴 달려갔더니 이 청년이 ‘성폭행’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청년은 자신이 왜 경찰서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앉아있었습니다. 상대 여성은 거액의 돈을 요구했어요. 소위 ‘꽃뱀’이었던 겁니다. 다행히 제가 청년의 수화를 열심히 통역해 풀려났습니다.”

주성농인교회에는 이런 입소문을 듣고 서울은 물론 경기도 하남과 수원 등지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아온다. 주일 오후에는 비장애인에게도 무료로 수화를 가르친다.

“청각장애인은 겉모습만 봤을 때 비장애인과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로 얼마나 힘들게 생활하는지 잘 알지 못해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기에 대부분 허드렛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받는 그들의 숨겨진 아픔과 어려움을 어루만지고 있지만 실제 안타까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2006년 독일월드컵 기간에는 청각장애인들을 이끌고 독일을 방문해 선진 농교육을 전수받고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의 열기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청각장애 목회자들의 ‘입’을 대변하는 일도 그가 기쁨으로 하는 사역 중 하나다. 서울시농아교회연합회장을 맡아 농교회들의 연합과 일치사역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예술에 소질이 있는 청각장애인들을 가르쳐 농인찬양단도 만들었다. 필리핀에 청각장애인 선교사 2명을 파송하기도 했다.

“제 예술적 달란트를 나눠줘 청각장애인들이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문화선교활동에도 동참할 수 있도록 온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청각장애인들이 언제든지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설 수 있도록 24시간 예배당을 개방한 것도 그 이유입니다.”

이 같은 열매는 건축회사에 다니는 박 목사의 남편 이완복(65·케이지에스테크 대표)씨의 남다른 보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씨는 수입의 절반 이상을 박 목사의 사역에 후원한다.

그는 사람들이 건네는 질문에서 청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읽는다고 했다.

“어느 날 목사님 한 분이 제게 이렇게 묻더군요. ‘집회 때 청각장애인들이 그렇게 많이 옵니까. 교회 올 때 어떻게 오나요. 버스 빌려서 모두 태워옵니까’라고요.”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 즉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틀에 박힌 생각에 그는 편치 않은 마음을 내비쳤다고 한다.

“그 질문에 그냥 이렇게 대답했어요. 자기들끼리 지하철 타고 알아서 옵니다. 그런데 그 질문했던 분이 우리 청각장애인 교인들을 한 번 보신 뒤 ‘확’ 달라졌어요. 찬양과 율동, 성경읽기 어느 것 하나 못하는 게 없는 친구들이거든요.”

박 목사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작지만 큰 포부를 갖고 있다. 청각장애인의 보금자리와 복지센터인 세계농아센터를 건립하는 것이다.

그는 국내 선교활동뿐 아니라 해외선교에도 열심이다. 특히 태국의 선교 전초기지인 메짠센터 이사로 활동하면서 카렌족 등 소수민족 복음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의 목회철학은 ‘섬김목회’다. 청각장애인 교회와 성도를 섬기면서 이들의 ‘통역사’로서 자신의 다짐을 잊어본 적이 없다. 섬김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마 20:28)이고 또한 기독교인이 해야 할 사명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예명 ‘우슬초’는 성경의 시편과 출애굽기, 민수기 등에 나오는 박하 향기가 나는 풀로, ‘성스럽다, 정결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2014년 9월 ‘에조브(우슬초) 선교회’를 발족했다. 선교회장이기도 한 그는 “히브리어로 우슬초를 에조브(ezov)라고 한다”며 “옛 이스라엘에서는 나환자들을 씻어주는 예식에 사용했다. 청각장애인을 비롯한 소외이웃을 위해 활동할 것”이라고 했다.

“평생을 깨끗하게 살고 싶다는 의지에서 ‘우슬초’라는 예명을 지었습니다. 그림과 찬양, 춤 솜씨가 오직 주님이 향하신 뜻에 아름답게 쓰임받길 소원합니다. 청각장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행복한 삶을 살겠습니다.”

박 목사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청각장애인을 위한 사역을 활발히 펼쳐줄 것을 요청했다. 또 기도와 관심도 간절히 바랐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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