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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적법하게’ 죽이는 법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어크로스, 352쪽, 1만6800원

민주주의는 어떻게 종말을 맞이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졌을 때 많은 독자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이 탱크를 몰고 거리를 진격하거나, 시민들의 추앙을 받는 지도자가 정적의 총칼에 맞아 목숨을 잃는 장면일 것이다. 실제로 냉전 기간 일어난 “민주주의의 죽음” 가운데 75%는 쿠데타에 의한 것이었으니 엉뚱한 상상은 아닐 듯하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죽음을 맞는 건 이제 옛날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시민들은 투표를 통해 지도자를 뽑고, 지도자는 적법한 절차를 밟아 권력을 휘두르는데도 민주주의가 뒤흔들리는 사례가 지구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이 그랬고, 어쩌면 도널드 트럼프가 조종간을 잡은 미국 역시 그런 케이스일 테니까 말이다.

두 저자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민주주의 붕괴를 주제로 연구하고, 글을 쓰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정치학자다. 이들은 트럼프가 당선되자 뉴욕타임스에 ‘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라는 칼럼을 게재했는데, 이 글은 100만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한다.

칼럼이 실린 뒤 출판사에서 단행본을 내보자는 요청이 이어졌을 건 불문가지다. 두 저자는 결국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을 펴냈는데 언론의 호평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책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눈길을 끄는 부분 중 하나는 민주주의가 무너진 국가들에선 비슷한 패턴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런 국가들에선 주요 정당에 괜찮은 후보를 선별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지도자는 경쟁자를 적으로 여기면서 언론을 공격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감지할 수 있게 도와주면서 잠재적 독재자 감별법까지 전해주는 흥미로운 책이다. 두 저자는 “극단주의자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기성 정당이 두려움과 기회주의, 혹은 판단 착오로 인해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을 때 민주주의는 무너진다”고 강조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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