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가 감춰둔 불을 훔쳐 인간에게 내줌으로써 인간에게 문명을 가르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불을 도둑맞은 제우스는 복수를 결심하고 판도라라는 여성을 프로메테우스에게 보낸다.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판도라를 아내로 삼았는데 이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 사건이 일어나고 인류의 불행이 비롯됐다고 한다. 또 프로메테우스도 코카서스의 바위에 쇠사슬로 묶여 날마다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 되면 간은 다시 회복되어 영원한 고통을 겪게 됐다고 한다. 그리스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의 일화다.
영원한 프로메테우스의 아픈 형벌을 받았다고 하는데 현대에도 비슷한 질환이 있다. 바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이라는 병이다. 이 병은 사망하거나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 단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극심한 통증이 나타나는 병이며, 돌발통이 생기면 최고 수준의 통증을 경험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 다른 강력한 통증을 살펴보자. 잘 알려져 있는 암이라는 병이 있다. 암은 수많은 연구자와 의학자들이 정복을 위해 노력중이며 많은 연구비가 투여되는 질환이다. 암이 진행돼 생기는 암성 통증(Cancer Pain) 역시 강력한 통증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암성 통증은 끝이 보이는 병이다. 환자가 완치가 되든 불행히도 사망을 하든 끝장을 보게돼 있다.
통증을 치료하는 의사로서 만약 나에게 통증이라는 질환이 생긴다면, 만약 나에게 선택권이 있다면 두 가지 통증 질환 중 어떤 것을 택할 수 있을까?
죽지는 않고 영원히 아픈 병(복합부위 통증증후군)과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끝장을 보자는 통증(암성 통증) 중에 어떤 것이 더 힘들고 강력할까?
얼마전 정부에서 척수강내 약물주입 펌프 삽입술(Implantation of Intrathecal Drug Delivery System)의 전체 급여화를 실시해 난치성 통증환자들이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을 덜게됐다. 반가운 소식이다. 그동안 경제적 어려움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환우들을 보아오면서 이들에게 절망감을 주었던 부분이 어느 정도 해소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 환자들은 질병에 이환된 사지를 사실상 사용하지 못함에도, 장애판정 등에서 아직도 선진 각국에 미치지 못하는 처우를 받고 있다. 또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하는 군복무 중 발생하는 통증질환(신경손상, 외상후통증증후군 등)에 대해서도 충분한 처우를 받고 있지 못하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지향하는 21세기에 죽고사는 질병만이 아닌 통증질환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관심이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좀 더 만족스러운 현대의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최종범 아주대학교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