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외상센터’ 알듯 말듯 한 용어다.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는 아니다. 병원을 다니는 환자조차도 잘 모른다. 응급실의 별칭 정도로 이해한다. 중증외상센터란 응급실 수준을 넘어 생명이 위독한 중증외상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면 곧바로 관련 전문의들이 집중 투입돼 응급수술과 치료를 365일 24시간 할 수 있는 센터를 말한다. 추락사고나 교통사고를 당했거나 총상을 입거나 흉기에 찔리는 등으로 심각한 외상을 입은 경우 응급실이 먼저 떠오른다. 119구급차에 실려 온 중상 환자들이 응급실에서 다급하게 치료받는 장면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급실에 실려 온 중증외상 환자들 중 연간 1만명 이상은 살 수 있는데도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들은 많지 않다.
중증외상센터가 우리 사회 이슈로 떠오른 것은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이 해적으로부터 6발의 총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하면서부터다. 중상의 석 선장은 입국 후 서울에서는 마땅히 치료할 병원이 없어 결국 수원에 있는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에 입원했다. 이곳에서 중증외상전문의 이국종 교수로부터 집중치료를 받았고 석해균 선장은 기적처럼 살아났다.
석 선장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에도 선진국 수준의 중증외상센터를 설립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높아졌다. 정부는 2016년까지 4년 동안 2000억원을 투입해 전국적인 중증외상관리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였다. 현재까지 전국에는 17개의 권역외상센터가 지정돼 있고, 이 중 13개가 운영 중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중증외상체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 2년 전 발생했다. 일명 ‘소아 중증외상 김민건 군 사망사건’이다.
김 군은 오후 5시경 후진하던 10톤 트럭에 골반과 왼쪽 다리가 바퀴에 깔리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119구급차로 골든타임 이내인 40분만에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전북대병원에 도착했다. 그러나 중증외상 환아를 수술할 수 있는 소아정형외과 전문의와 수술방이 없다는 이유로 병원 도착 약 30분만에 전원이 결정됐다. 이후 전국 13개 병원 응급실에 전원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김 군은 심정지가 와 심폐소생술까지 받은 초응급 상태인데도 말이다. 결국 헬기에 실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까지 이송돼 수술을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사망했다. 만일 119구급대가 소아중증외상 김 군을 수술할 전문의와 수술방이 없었던 전북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아닌 항시 준비돼 있는 권역외상센터인 전남대병원이나 아주대병원으로 처음부터 이송했다면 제때 치료받아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국내에서는 중증외상환자가 권역외상센터로 곧바로 이송되는 비율이 2017년 기준 6.5%에 불과하다. 대부분 응급실을 몇 번 거쳐 권역외상센터로 오기 때문에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매년 1만명 이상의 중증외상 환자가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죽는다. 그런데도 유족들은 아무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 정도로 심각한 외상을 입으면 우리나라 국민은 당연히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크게 다치더라도 권역외상센터에 살아서 오기만 하면 살수 있다는 신뢰를 국민들이 갖도록 해야 한다.
‘권역외상센터가 있으면 연간 1만명 이상의 중증외상 환자가 죽지 않고 살 수 있고 그 1만 명 중에 당신도 언제든지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강하게 심어주어야 한다. 권역외상센터는 생명 연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린다. 권역외상센터는 연간 1만명의 중증외상환자를 살리는 이 시대의 최고의 신약과 다름없다. 이제는 환자가 나서야 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