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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임성수] 승자의 저주



“이런 승리를 또 거두었다간 우리가 망할 것이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 북부 에피루스의 왕 피로스는 로마와의 전쟁에서 여러 번 승리했지만 자신들의 희생도 로마 못지않게 크자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패배나 다름없는 승리를 흔히 ‘피로스의 승리’라고 부르게 된 유래다. 경제학에선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는 개념도 있다. 승리를 위해 치른 과도한 비용이 거대한 재앙으로 되돌아오는 상황을 말한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직책 생략)의 연속 집권과 수감은 한국 정치판 ‘피로스의 승리’라고 할 만한 사례다. 이명박은 지난 5일 1심에서 15년형을 선고받았고, 앞서 박근혜는 2심에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다. 대한민국은 전(前) 대통령과 전전(前前) 대통령이 비슷한 시기에 나란히 복역하고 있는 흔치 않은 나라가 됐다.

시계를 11년 전인 2007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노무현정부의 지지율 추락으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은 당내 경선만 승리하면 대통령이 된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사생결단 경선 끝에 이명박은 승리했고, 대선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이후 박근혜까지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이라는 ‘불법적 비용’의 도움을 받아 201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두 사람뿐 아니라 어느 누구도 ‘감옥에 있는 두 전직 대통령’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몰락의 씨앗은 이미 2007년부터 뿌려지고 있었다. 두 전직 대통령을 수감자 신세로 만든 지금의 혐의 대부분은 경선 당시 서로가 서로에게 제기했던 의혹이었다. 당시 박근혜 캠프는 이명박을 향해 다스 실소유 의혹을 제기했고, 반대로 이명박 캠프는 박근혜를 향해 ‘최태민 일가의 꼭두각시’라고 반격했다. 천기누설에 가까운 주장이었지만 승자독식의 정치문화 탓에 선거 승리만 하면 ‘덮을 수 있는 진실’로 여겨졌다. 실제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검찰은 다스 관련 의혹을 조사했지만 무혐의 처분했다. 최순실의 전횡도 2016년 결정적 물증이 발견되기 전까지 유언비어로 치부됐다.

하지만 진실은 끝내 시퍼렇게 살아서 돌아왔다. 의혹들은 11년 만에 진실로 돌아와 두 사람을 가두는 족쇄가 됐다. 만약 2007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두 사람은 어떤 결정을 내릴까. 수감과 불명예 등 모든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대통령은 한번 해볼 만한 자리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우리가 먼저 망할 것”이라며 손사래를 칠까.

임성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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