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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日 미투운동 시발점 이토 시오리 “성폭행 피해 폭로, 진실 찾고 싶었다”

일본의 프리랜서 기자 이토 시오리가 7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서울힐튼 호텔에서 열린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온리 예스 민스 예스(only yes means yes)’ 문구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 문구는 ‘노 민스 노’(No means no·상대가 거부한 성관계는 성폭력) 원칙에서 더 나아가 상대방의 명백한 동의가 없으면 성폭력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뜻이다. 윤성호 기자


“제가 성폭력 피해를 고발한 것은 무엇보다 저널리스트로서 진실을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또 피해 사실을 알려야만 일본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일본에서 미투(MeToo)운동의 시발점이 된 프리랜서 기자 겸 다큐멘터리 감독 이토 시오리(伊藤詩織·29)가 한국을 찾았다. 서울에서 열린 국제탐사저널리즘 아시아총회 ‘아시아의 미투 보도’ 세션 발표자로 나섰다.

그는 7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서울힐튼 호텔에서 가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10월 5일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계기로 시작된 미투운동이 이제 1년이 됐다. 언론이 이런 큰 변화를 일으켰다는 점에서 기자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이토는 지난해 5월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성폭행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성폭력 문제에 폐쇄적인 일본에서 피해자가 얼굴을 공개하고 실명으로 기자회견을 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2015년 4월 일본 TBS방송 워싱턴지국장이던 야마구치 노리유키에게 성폭행을 당한 그는 당시 경찰에 신고했지만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검찰도 가해자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가해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측근의 도움으로 체포되지 않았던 사실이 훗날 일본 잡지 ‘주간신초’ 취재로 밝혀졌다.

“사건 발생 후 1년4개월 만에 불기소 처분이 나왔을 때는 저도 살 의욕이 없어졌어요. 그런데 도쿄에서 열린 세계보도사진전에서 미군 내 성폭력 사건을 추적한 보도사진을 보고 다시 싸울 용기를 얻었어요. 죽을 각오까지 해서인지 두려움도 사라졌어요.”

그는 처음에는 성폭행을 당한 자신에게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2차 가해를 당하면서 일본 법률 및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해 10월 그는 그동안의 과정을 담은 책 ‘블랙박스’를 펴냈다. 하지만 피해자인 그에게 일본의 여론은 차갑기만 했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저를 ‘꽃뱀’ ‘위안부’라고 욕했어요. 특히 여자들이 저를 더 욕했는데요. 당시 미국에서 와인스타인 사건이 터진 뒤 미투운동이 여성들의 연대를 바탕으로 불붙는 걸 보니 더 슬펐어요.”

일본 언론은 철저히 그를 무시했지만 해외 언론은 오히려 그를 주목했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본 사회에서 몸부림치는 그의 용기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영국 BBC방송이 다큐멘터리 ‘일본의 감춰진 수치’를 제작하는 등 해외 여러 방송사가 그의 투쟁을 담았다.

그는 최근 성폭력 피해 고발 여성에 대한 일본 사회의 비난이 가혹한 것을 감안해 위투(WeToo·우리도 행동해야 한다)운동에 나섰다. 지난 3월 일본에서 설립된 ‘위투 재팬’은 성폭력 문제 피해자 지원과 제도 개선을 위한 플랫폼으로 출발했다.

“일본 사회가 변하려면 교육과 법률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교육을 통한 성차별 타파 등 인식의 문제는 다소 시간이 걸리지만 우선 법 개정으로 성폭력 피해자를 공격하는 일은 막을 수 있거든요.”

그는 지난 7월 영국 런던으로 이주했다. 일부 우익세력의 온라인 협박 공세가 이어지자 영국 인권단체가 그의 안전을 위해 이주를 제안했다. 그는 프리랜서 기자로 ‘이코노미스트’ ‘알자지라’ ‘로이터’ 등 해외 매체에 영상뉴스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보내고 있다. 그가 처음으로 감독과 제작을 맡은 다큐멘터리 ‘고독사’는 지난 7월 세계적인 미디어 경연장인 뉴욕 페스티벌에서 은상을 받기도 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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