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벤, 템스강, 애비로드, 트라팔가 광장, 카를 마르크스의 묘, 하이드파크, 다우닝가 10번지와 11번지의 낡은 목조 타운하우스 두 채, 버킹엄 궁전….
영국 런던의 명소들이다. 그런데 런던은 어느 한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문화와 유행을 생산해낸 곳이다. 비틀스 이래로 이 세상 대부분의 로큰롤 음악 조류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스쿠터를 탄 모브족부터 펑크족, 미니스커트, 버버리 트렌치코트…. 전 세계를 열광시킨 패션도 런던이 원산지다.
이 모든 이면엔 말쑥한 정장 차림으로 중심가 거리를 활보하는 비즈니스맨들이 있었다. 숨쉴 틈 없이 일하는 이들이 벌어들인 돈이 음악과 문화, 패션과 유행을 먹여 살렸다. 축적된 부(富)가 수많은 부산물을 낳는 일은 당연지사다.
근대 이래 런던은 가장 부유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자본주의가 태동해 신흥 부르주아지 계급이 생겨나고 이들이 축적한 거대한 부는 상업과 금융, 2차산업으로 스며들었다. 19세기 식민지 경영의 최전선으로 대영제국을 상징하기도 했고, 1950년대 연기(smoke)와 안개(fog)가 합쳐진 스모그(smog)란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2차산업이 폭발하기도 한 곳이다.
제1의 암흑기와 재부흥
그랬던 런던이 암흑기를 겪은 시기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집권하기 전까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슬로건을 앞세워 연금, 건강보험, 양육비까지 부담해야 했던 영국 정부는 강력한 노동조합의 압박에 2차산업 다수를 국유화했다. 철도 도로 항만 심지어 소매품 상점까지 국영기업이 도맡아 운영하던 그 시기, 영국은 감당할 수 없는 재정부채로 몰락 직전까지 내몰렸다. 2차산업의 비생산성은 영국 경제를 더 바닥으로 내몰았다.
1979년 여성인 대처 총리가 집권한 뒤 암흑기는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국영기업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 최고조의 긴축 재정이 핵심이었다. 1994년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뒤 런던은 예전의 영화(榮華)를 되찾았다. 노동당 정부가 노조를 약화시키고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활동을 더욱 고무시키자 돈이 돌았던 것이다.
2008년 미국의 글로벌 투자금융기관 리먼브러더스발(發) 금융위기가 터졌지만 런던은 이를 계기로 도약했다. 금융위기의 책임을 둘러싸고 세계 금융 시스템에 대한 온갖 비판이 당시 세계 제일의 금융도시 뉴욕 월스트리트로 향했다. 미국의 금융 패권을 대신할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런던은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한 도시였다.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에 착수하자 런던은 위안화를 거래할 역외시장을 유치했다.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들이 런던으로 몰려들었다. 2015년 중국인민은행은 런던에서 50억 위안 규모의 역외어음을 발행할 정도였다. 중국의 중앙은행이 해외에서 처음으로 발행한 위안화 표시 어음이었다.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로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럽대륙의 거대자본 유치에 유리하고, 독일 프랑스 등 자국 기업 선호 현상이 뚜렷한 유럽 국가들과 달리 글로벌 기업 선호 현상이 더 우세하다는 장점이 부각됐다. 무엇보다 금융거래에 최소한의 세금만 부과하는 런던시 당국과 영국 정부의 정책이 주효했다.
2008년 이후 런던은 뉴욕을 제치고 글로벌 금융 허브센터 1위 도시로 등극했다. 세계 금융의 판도는 런던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영국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01년 런던은 전 세계 금리 장외파생상품(OTC)의 35%를 책임졌고 해양보험의 32%, 국제 은행 대출의 18%, 헤지펀드 자산의 9%를 유치하고 있었다. 2014년 OTC의 경우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49%, 해양보험 41%, 국제 은행 대출 29%, 헤지펀드 자산 18%를 차지했다.
영국 경제 전체에서도 런던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었다. 국내총생산(GDP)의 11%를 책임졌고, 220만명의 관련 산업 종사자를 고용했으며, EU 국가 금융기관의 자산 1조4350억 달러를 유치했다. 영국 전체가 런던을 통해 ‘먹고살았던’ 셈이다. 금융 중심지 런던의 태평성세는 쭉 이어질 기세였다.
브렉시트, 정치가 만든 두 번째 몰락
그런데 갑자기 태풍이 몰려왔다. 2016년 6월 23일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가 찬반 국민투표를 통과한 것이다. 대중 정치인들의 선전선동이 주효했다. EU 소속 국가이면서도 유로화가 아닌 고유의 파운드화를 쓸 정도로 자존심이 센 국민, 받는 혜택보다 EU에 져야 할 부담과 세금 내는 데 더 민감한 서민을 부추긴 것이다.
런던은 당황했다.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과 은행들은 당장 이삿짐을 쌀 태세였다. 이들이 가장 걱정한 것은 ‘패스포팅(passpoting)’이었다. EU 내 한 국가의 감독기관에서 인가를 받으면 이후 복잡한 절차 없이도 다른 회원국들을 상대로 제품과 서비스를 팔 수 있는 권리가 바로 패스포팅이다. 브렉시트는 런던의 패스포팅 상실을 뜻한다. 글로벌 금융사로선 EU 단일 시장 접근권이 상실되면 런던에 있을 이유가 없다. 런던만큼 집값이 비싼 곳도 없기 때문이다. EU 내 다른 도시로 거점을 옮기고 런던에서 철수하거나 직원들을 대량 해고할 수밖에 없다.
이미 골드만삭스·JP모건·메릴린치 등 세계 3대 투자은행은 런던사업부를 절반 이하로 축소했다. 골드만삭스는 런던 인력의 절반을 감축했고 JP모건은 유럽 다른 도시의 3개 사무소로 인력 재배치를 완료했다. 독일 도이치뱅크, 일본 노무라증권, 중국 홍콩상하이은행(HSBC),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 심지어 영국 토종 금융사인 바클레이즈까지 탈출 러시에 가담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관련 금융산업 종사자까지 합쳐 220만명을 먹여 살리던 런던이 몰락하면 영국 경제 전체가 쑥대밭이 될 게 틀림없다. 우선은 런던 내 금융사들의 엑소더스만 진행될 테지만 향후 수년 동안 다른 도시들의 금융기관들도 고사할 수밖에 없어서다.
세계화의 포기, 좋은 전략일까.
런던의 관문은 히스로 국제공항이다. 이 공항은 여러 가지로 악명이 높다. 세계 유수의 공항 가운데 가장 불친절한 직원들, 느린 수속, 거의 옷을 다 벗어야 할 정도의 검색,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이 복잡한 구조, 비싸고 느려터진 연계 대중교통…. 런던시민조차 히스로 공항을 싫어한다.
그런데 히스로 공항을 통과하면 새로운 런던을 목격하게 된다. 뉴욕보다 더 다양한 인종, 아랍어와 중국어 일본어 아프리카어 스페인어 영어가 혼재된 도심…. 런던시민들만큼 다문화에 관대한 사람도 없어 보일 정도다. 어느 도시보다 세계화된 생동감 넘치는 곳이다. 용광로처럼 다양한 인종이 섞여 새로운 문화와 산업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 식자층에게 브렉시트를 물어보면 “히스로 공항을 빠져나왔다가 뭔가 두고 와서 되돌아가는 것처럼 멍청한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왜 브렉시트를 선택했느냐고 하면 “누가?” “절대 알 수 없는 게 영국사람 속”이란 답이 돌아온다.
그들에게도, 유럽인에게도, 우리에게도 브렉시트는 영국인 스스로가 택한 세계화의 포기다. 국경 없이 여행하고 합법적이라면 차별과 불평등 없이 일하고 살아갈 수 있는 제도와 체제를 포기하는 길이다. 남의 것보다 오래된 내 것만이 더 소중하다는 생각의 끝엔 자존심이란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이 존재한다. 텃세, 편협, 자만 이런 것들이다. 밖에 나가 얻어온 자산이 집에 돌아와 문을 꽉 닫고 남한테 보여주지도 않으면 지켜지는 것일까. 런던이 치르는 대가를 지켜보면 세계화의 포기가 바른 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