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으로 촉발된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외교·안보·군사 분야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양국의 원색적인 비난전이 가열되는가 하면 남중국해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구축함이 충돌 직전까지 대치했다. 중국의 군사력 증강은 인도와 일본, 호주 등 주변국들의 군비 경쟁에도 불을 지폈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그에 버금가는 무력시위로 맞불을 놓는 상황이다. 미·중 싸움판에 주변 강국들도 가세하는 ‘신 냉전’ 구도가 뚜렷해지는 분위기다.
미·중 갈등은 최근 더욱 거칠어졌지만 사실 20년여년 전부터 부각된 이슈다. 1989년 미국과 소련 정상의 냉전체제 종식에 이어 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미·소 냉전 체제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그러나 미국은 ‘새로운 위협’인 중국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중국 위협론(China Threat)’은 90년 8월 일본 방위대 무라이 도모히데 교수가 잡지 ‘쇼군’에 발표한 논문 ‘중국, 잠재위협을 논함’에 등장한 논리다. 문화대혁명 암흑기를 거친 중국이 78년 개혁·개방을 선언한 지 불과 10여년 만에 중국 위협론이 등장한 셈이다.
이후 92년 로스 먼로 교수의 논문 ‘깨어나는 거룡(巨龍), 아시아의 위협은 중국에서 온다’는 이 논란에 불을 댕겼다. 2002년 미 국방부 연례보고서는 중국의 군사력이 미국에도 위협이 된다며 대중국 봉쇄정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중국 위협론은 과거나 지금이나 큰 그림은 비슷하다.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란 중화사상 탓에 중국은 기본적으로 패권을 추구하고, 아편전쟁이란 치욕의 역사를 씻고 ‘중화민족의 부흥’ 기치 아래 공세적 외교정책을 펼 것이란 경계심이 깔려 있다. 중국의 경제패권 확장과 군사적 위협도 두려움으로 작용했다.
미국은 중국을 20년 넘게 견제했지만 굴기를 막아내지 못했다. 특히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후 중국은 거침없는 패권 야심을 드러냈다. 시 주석의 중국은 2014년 국방비를 12.2% 올렸고 올해도 사상 최대 규모인 1조1100억 위안(약 182조원)을 국방비로 책정했다.
게다가 시 주석은 집권 2기를 시작하며 “2050년까지 세계 일류 군대를 건설하겠다”며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선언했다. 중국은 2025년까지 핵추진 항공모함을 포함, 모두 4척의 항모와 강습상륙함 3척을 보유할 계획이다.
중국의 군사굴기는 주변국들의 연쇄 군비경쟁을 촉발하고 있다. 호주는 향후 10년간 1470억 달러를 들여 최첨단 무기와 장비를 획득할 계획이다. 호주 정부는 또 2012년 국내총생산(GDP)의 1.6% 수준이던 국방비를 2020∼2021년 2%까지 올리기로 했다. 일본 방위성은 내년 방위비 예산으로 올해보다 2.1% 늘어난 5조3000억엔(53조원)을 편성해 재무성에 제출했다. 올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연간 국방비 총액은 2000년대 초에 비해 2배 늘어 약 45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중국은 시 주석 체제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등을 내걸고 남중국해와 인도양,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바닷길에서 제해권을 장악해가고 있다. 중국은 방글라데시 미얀마 스리랑카 몰디브 지부티 등 핵심 요지에 거점을 확보하며 ‘진주목걸이’ 전략을 거의 완성했다. 중국은 아프리카와 중동을 잇는 해상 수송로를 확보했지만 인도 입장에선 중국에 포위당한 구도가 됐다. 미국도 인도양과 남중국해 해상 운송로가 위협받는 처지가 됐다. 미국이 다급하게 인도 일본 호주 등과 외교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사하고 나선 이유다.
중국은 러시아 군사훈련에도 참가하면서 결속을 과시하는 중이다. 러시아는 지난달 11∼17일 시베리아에서 병력 30만명과 군용기 1000대, 전차 및 장갑차 3만6000여대를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이에 맞서 나토도 10월 말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로 했다. 북대서양과 발트해 일대에서 실시되는 ‘트라이던 정처 2018’ 훈련에는 30개국이 참여한다. ‘중국·러시아 대(對) 미국 연합군’의 군사력 대결 구도가 선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미국이 ‘세계 패권’ 경쟁에서 중국을 제압할 마지막 카드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이미 각 분야에서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미국이 중국의 기세를 꺾을 수단은 별로 없어보였다. 하지만 기업인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존의 룰을 파기하고 무역전쟁에 이어 외교안보 분야까지 전방위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중 간 무력충돌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특히 남중국해는 미·중 충돌의 위험지대로 꼽힌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90%가량을 차지하는 남해구단선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곳곳에 있는 암초에 인공섬을 건설하는 등 해상 영토 굳히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에 맞선 미국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부터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치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오마바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 미국을 방문한 시 주석에게 “(남중국해 인공섬) 군사시설 설치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시 주석은 “우리 영토니 상관 말라”며 맞받아쳤다. 미국은 두 달 후 처음으로 구축함을 남중국해 수비환초 12해리 이내에 진입시키고, 전략폭격기까지 인근 상공에 출격시켰다.
미국은 최근에도 B-52 폭격기를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진입시켰고, 미 해군 구축함은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난사군도)에서 중국 구축함과 충돌 직전까지 갔다. 중국은 이에 맞서 미·중 외교안보 대화를 취소하고 미 해병대의 강습상륙함의 홍콩 기항도 거부한 상황이다.
남중국해는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전 세계 해양 물류의 절반, 원유 수송량의 3분의 2가 지나는 군사·안보상 요충지다. 미국과 중국 모두 끝까지 양보하기 힘든 지역인 셈이다. 중국은 현재 해군력에서 미국과 비교가 안되지만 2030년대 중반에는 함정 수가 500척을 넘어서며 세계 최강 해군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미국 입장에선 조금 더 지나면 군사력으로도 중국을 당할 수 없다는 얘기다. 따라서 지금이 양측의 충돌 위험이 가장 높은 시기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모두 ‘스트롱맨’인 이유도 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