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부터 기다렸어요, 빨리 진료 받으려고.”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캄보디아 씨엠립주 외곽마을 ‘타이약’은 잔치라도 열린 듯 들뜬 분위기였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보건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주민 200여명이 몰려 장사진을 이뤘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나이도 성별도 다양했다. 한국에서 온 의사들이 ‘바늘 같은 도구’를 여기저기에 꽂아 아픈 곳을 낫게 해줬다는 소식이 파다하게 퍼진 듯했다.
“어제보다 사람이 많다”는 말에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콤스타·KOMSTA) 단원들은 한층 더 분주해졌다. 오전 9시가 되자 보건소 마당에 놓인 벤치와 테이블은 기본적인 환자 상태를 체크하는 ‘예진실’로, 결핵환자를 돌보던 공간은 침이나 부항 등 한방 치료를 받는 ‘진료실’로 변신했다. 침대도 의자도 없었다. 대신 형형색색 돗자리 12개가 바닥에 깔렸다. 하늘색 의료복을 입은 한의사와 현지 통역사들은 일제히 신발을 벗고 환자를 맞았다.
31도를 웃도는 날씨에 진료실은 금세 후덥지근한 열기로 가득 찼다. 환자의 몸을 매만지는 한의사들의 얼굴도 발갛게 상기됐다. 어깨, 허리, 다리 등 저마다 다른 부위를 드러낸 환자들은 침을 보자 긴장감을 숨기지 못했다. “괜찮아요. 아프지 않아요.” 한의사가 가볍게 손가락을 퉁기자 은빛 침이 미끄러지듯 살갗을 파고들었다. 주민들은 하나같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생소한 ‘침 치료’를 지켜봤다. ‘아프냐’ ‘아프지 않다’는 대화가 환자들 사이에 심심찮게 오갔다.
콤스타는 그동안 캄보디아를 포함해 29개국을 찾았다. 152번째 활동인 이번 의료봉사는 단기팀과 중기팀으로 나뉘어 각각 씨엠립, 바탐방에서 진행됐다. 단기팀은 본래 씨엠립 주립병원만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더 많은 환자를 돌보기 위해 현지 보건국장의 소개를 받아 타이약을 긴급 섭외했다. 지난달 24∼27일 나흘간 씨엠립 주립병원과 타이약 보건소에서 550여명이 한의사 10명에게 무료 진료를 받았다.
캄보디아는 앙코르와트로 유명한 세계적 관광지이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이 1423달러(2017년)에 불과한 아시아 최빈국 중 하나다. 특히 현지인들의 의료비 부담이 크다. 현지 통역사 렌릇(26)씨는 “캄보디아 병원비가 너무 비싸 아프면 참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아무리 아파도 약국에서 약만 받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실제 캄보디아의 열악한 환경을 증명하듯 기생충 감염 환자가 종종 눈에 띄었다. 단기팀 단장을 맡은 이강욱(54) 한의사는 “영양부족과 위생 문제로 오는 환자가 많았다”며 “손씻기 수칙만 지켜도 걸리지 않을 병인데, 기본적으로 물이 깨끗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씨엠립 중심가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타이약은 한국 의료진이 한 번도 방문한 적 없는 지역이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수엉덴(56·여)씨는 “한의사에게 진료 받은 건 처음인데 몇 개월 전부터 아팠던 허리가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소화불량과 무릎·허리 통증에 시달렸던 럼염펄에(77·여)씨도 “효과가 정말 좋다. 캄보디아에 한의원이 생겼으면 좋겠다”며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았다. 캄보디아식 감사 인사다.
주립병원에서 치료받은 쭈윤전(51)씨는 한국어로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툭툭(오토바이형 택시) 기사인 그는 고혈압과 무릎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는 “한국 의사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어 침 치료도 무섭지 않았다”며 “한국 NGO에서 캄보디아를 도와줘서 정말 감사하다. 진료를 받고 무척 기분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한의원은 대부분 소규모로 운영되기 때문에 장기간 해외 의료봉사를 가는 건 한의사들에게 ‘장사를 접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콤스타 활동에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하다. 최재화(47) 한의사는 “하루만 의원 문을 닫아도 환자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는데 1주일씩 닫고 봉사를 오는 건 불가능하다”며 “추석연휴가 끼지 않았다면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희영(31) 한의사 역시 당직을 바꾸고 연차를 사용했다며 “시간이 되면 더 자주 오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다”고 아쉬워했다.
봉사에 참여한 한의사들은 하나같이 “진료를 하면서 내가 더 힐링 받는다”고 말했다. 35년 경력의 이한구(60) 한의사는 “의료봉사 하고 나면 몸이 힘들어도 마음은 편하다. 나에게도 힐링”이라며 “남은 삶을 해외봉사하며 보내고 싶다”고 털어놨다. 4년차 이승재(29) 한의사 역시 “봉사는 결국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하는 것 같다”며 “진심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환자를 만날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단기팀 의료부장을 맡은 김영삼(52) 한의사는 진료 내내 환자들에게 반복해서 “건강하자. 행복하자”라는 말을 현지어로 되뇌게 했다. 김 한의사는 “말로 내뱉는 순간 치료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생각한다”며 “이곳에서 만난 캄보디아 사람들이 앞으로도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씨엠립=글·사진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 콤스타 허영진 단장
“중요한 건 지속적 치료… 개도국 한의학 교육 모색해야”
대한한방해외의료봉사단(KOMSTA·콤스타)은 한의사 의료봉사단체로 1993년 설립됐다.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전 세계 이웃들을 대상으로 우리나라 고유 의학인 한의학을 통해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다.
허영진(49·사진) 콤스타 단장은 “지속적인 의료봉사와 질병 예방교육을 전파해 세계 인류 모두가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길 바라는 취지에서 출범한 단체”라고 말했다. 이어 “주로 정부개발원조(ODA) 대상 국가를 중심으로 의료봉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다문화가정, 외국인 근로자 등 의료서비스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 단장은 2003년 콤스타와 인연을 맺었다. 한 학회의 회원 자격으로 터키 의료봉사에 참여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는 “이전까지 마음속으로만 담아둔 해외의료봉사를 다녀오면서 의료인으로서 평소 환자를 더욱 성실히 진료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의료봉사에 전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허 단장에게 봉사는 ‘지식의 나눔’이자 ‘배운 자의 의무’였다. 의료인으로서 환자를 돌보며 느끼는 보람도 크지만, 어느 환자에게나 진짜 필요한 건 ‘지속적인 진료’라고 여겼다. 허 단장은 “앞으로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의학 교육과 임상이 병행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콤스타는 올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과 손잡고 월드프렌즈(장기 해외봉사 프로그램) 봉사단 일원으로 지난 8월 우즈베키스탄, 9∼10월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진행했다. 다음 달에는 ‘포스코 1%나눔재단’ 지원으로 방글라데시 의료봉사가 예정돼 있다.
허 단장은 의료봉사를 희망하는 한의사들에게 “많은 한의사들이 각자의 터전에서 의료봉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의료봉사를 희망하지만 선뜻 참여가 어려운 한의사들이나 해외에서 지식의 나눔을 실천하고 싶은 한의사들은 언제든 콤스타의 문을 두드리기 바란다. 여러분의 등대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양정원 기자 yjw700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