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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좋아한다면 절대 혼자가 아니다”

한 남자가 배낭을 메고 숲속을 걸어가고 있다. 27년간 숲에서 은둔했던 크리스토퍼 나이트의 모습이 저랬을까. ‘숲속의 은둔자’에는 그의 목표가 “길을 잃는 것”이었다고, “그냥 세상에서 행방불명되는 게 아니라 숲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었다고 적혀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자그마치 27년을 숲속에서 살았다. 그 어떤 사람과도 연락하지 않았고 누구와도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남자는 라디오를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혹은 멍하게 앉아 몽상을 즐기면서 그토록 오랜 시간을 흘려보냈다. 한갓진 오두막에서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던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재현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로와는 많이 다르다.

희대의 은둔자였던 이 남자의 이름은 크리스토퍼 나이트(53). 1986년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진 그는 2013년까지 미국 메인주(州)의 한 호숫가 숲속에 둥지를 틀고 혼자 살았다. ‘숲속의 은둔자’는 그의 인생 스토리를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인 마이클 핀클(50)이 풀어쓴 작품인데, 책에는 기구하기 짝이 없는 이 남자의 삶이 담겨 있다. 자, 그렇다면 독자들이 궁금해할 질문부터 하자. 무슨 이유에서 그는 세상을 등졌던 것일까.

왜 그는 은둔의 삶을 택했나

그의 기행(奇行)이 시작된 86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당시 그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내성적이긴 했지만 특별한 정신질환이 있었던 건 아니다. 고교 시절엔 새로 나온 전자제품을 다루는 걸 좋아했다. 고교 졸업앨범 장래희망을 적는 란에 ‘컴퓨터 기술자’라고 썼을 정도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국 동부 매사추세츠에 살던 그는 어느 날 자동차를 몰고 국토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는 플로리다까지 달렸다. 그리고 다시 핸들을 꺾어 북쪽으로 향했다. “기름이 거의 다 떨어질 때까지 달렸어요. 작은 길이 끊어지고 오솔길이 나오더군요.”

나이트는 자동차 계기판에 차 키를 올려놓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은둔의 삶이 시작됐다. 왜 이런 일을 감행한 걸까. 저자가 이렇게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허망했다.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이트는 저자의 질문에 “미스터리예요”라고 짧게 답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숲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걸까. 다행스럽게도 은둔 기간 내내 크게 아프거나 심하게 다친 적이 없었다. 충치 탓에 주야장천 치통을 앓았을 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추위였다. 짐승들이 그렇듯 겨울이 다가오면 일부러 살을 찌웠고 찬바람을 막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 책에는 “고립을 위한 그의 헌신은 절대적이었다”고 적혀 있다.

음식을 구하는 일도 만만찮았을 건 불문가지다. 식량은 도둑질을 통해 해결했다. 은신처를 마련한 장소 인근엔 호수가 있고, 호숫가엔 장애인을 위한 캠프 시설과 오두막이 늘어서 있었는데 이곳에서 음식과 자질구레한 생활용품을 훔쳤다. 그는 1년에 40번 정도 절도를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은둔 기간이 27년이니 우리는 그가 저지른 절도 횟수를 계산할 수 있다. 27×40=1080. 즉, 그는 1000번 넘게 누군가의 무언가를 훔친 대도(大盜)였던 셈이다.

통조림을 훔쳤고 삼각팬티를 훔쳤고 책을 훔쳤고 라디오를 훔쳤고 게임기를 훔쳤다. 프로판가스나 매트리스 같은 무거운 물건은 호수에 있는 카누를 이용해 운반했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신출귀몰한 능력과 타고난 조심성 덕분에 나이트는 오랫동안 검거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3년 결국 경찰에 덜미가 잡히면서 그의 은둔 생활은 마침표를 찍게 된다. 만약 잡히지 않았다면 그는 지금까지도 숲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일구고 있을 것이다.

은둔의 삶은 무엇을 남겼을까

나이트는 검거되자마자 자신의 범행 사실을 모두 자백했다. 미국 언론들은 그를 ‘미국판 로빈슨 크루소’라고 불렀다. 저자는 교도소에 복역 중인 나이트에게 편지를 띄웠고, 나이트는 답장을 보냈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엔 편지가 오갔고 면회도 이뤄졌다. 저자는 편지와 면회를 통해 얻은 정보에 나이트의 지인 140여명을 인터뷰해 이 책을 완성했다.

혼자 숲속에서 산다는 게 무섭진 않았을지 물었을 때 나이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곳에서 죽을 준비가 돼 있었어요.” 그렇다면 엄청났을 외로움은 어떻게 견뎠을까. 그는 “고독을 좋아한다면 절대 혼자가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해가 되는가”라고 되물었다.

독자들의 관심은 결국 이런 질문으로 수렴될 것이다. 나이트는 그토록 오랜 기간 은둔의 삶을 살면서 무엇을 깨달았을까. 다음은 저자와 나이트가 주고받은 질문과 답변이다.

“야생에서 깨달은 원대한 통찰력 같은 게 있나요?”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는 거예요.”

그야말로 허무하기 그지없는 말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독자들은 기인의 삶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나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방송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숲속의 은둔자’는 그렇게 허투루 여길 만한 작품이 아니다. 이 책은 ‘그는 왜 사회를 떠났을까’라는 궁금증을 품고 책장을 넘기다가 어느 순간 정반대의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왜 우리는 굳이 사회에 속해서 살아야 할까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나이트는 교도소에서 7개월간 복역했다. 석방된 뒤에는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고철 재활용 사업을 하는 맏형을 도왔다. 창고에 틀어박혀 형이 가져다주는 자동차나 트랙터 엔진을 분해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나이트가 능숙하게 사회에 적응 중이라 했다. 그러나 안부를 묻는 저자의 질문에 그는 “뭔가 부서지고 있어요”라며 눈물을 훔친다.

나이트는 자신의 도피를 현대 문명을 향한 비판으로 해석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한다. “의식적으로 사회나 나 자신을 판단하지 않았어요. 그저 다른 길을 택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현대인의 삶을 평하는 그의 말엔 시종일관 가시가 돋쳐있다. 그는 도둑질을 하면서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사들인 물건들을 보며 혐오감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책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발언들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잊고 사는 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숲에서 지낸 생활 가운데 가장 그리운 것은 고요와 고독 사이, 그 어디쯤에 있는 상태예요. …시간은 계절과 달로 쟀습니다. 달은 분침, 계절은 시침이었어요.”

“(사회로 다시 나와서 만난 사람들은) 저에게 ‘휴대전화를 아주 좋아하게 될 거예요’라고들 합니다만 그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문자 메시지는 또 어떻고요. 그건 그냥 전화기를 전보로 사용하는 거 아닌가요? 인간은 퇴보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너무 시끄러워요. 너무 알록달록하죠. 미적 특질이 결여되어 있어요. 조야해요. 헛되고 하찮아요. 부적절한 열망과 목표를 선택하죠.”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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