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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신종수] 김정은의 교황 초청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 첫 장은 <김일성, “교황을 평양에 초청하라”>는 제목으로 시작된다. 내용은 이렇다. 소련이 붕괴되고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1년 김일성은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북한으로 초청할 것을 당시 외무상 김영남(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지시했다. 외무성 내에 교황을 평양에 초청하기 위한 상무조(TF)가 편성됐다. 태 전 공사는 상무조의 일원이었다.

바티칸 교황청이 “북한에 진짜 가톨릭 신자가 있다면 바티칸에 데려와 달라”고 요구했다. 사회안전부(현 보안성)가 주민등록부를 뒤져 6·25 당시까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한 할머니를 찾아냈다. 당 간부들이 이 할머니를 찾아가 “아직도 하느님을 믿느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수령님과 노동당이 있는데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슨 소리냐”고 부인했다. 당 간부들은 “솔직히 말해도 괜찮다. 로마 교황청에 보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물어보는 것이다. 독실한 신앙인을 찾아내면 당과 국가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설득했다. 그때서야 할머니는 “한번 마음속에 들어오신 하느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며 그들을 뒷담 예배 보는 곳으로 데려갔다. 바티칸에 가게 된 할머니는 “일생을 열심히 기도드렸더니 이렇게 어린양을 불러주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밤마다 여기서 기도하는 사실을 아들도 모르니 제발 아들에게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 를 통해 노동당은 신앙의 무서움을 절감했다고 한다. 북한의 실상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김일성의 교황 초청 시도는 무산됐지만 손자 김정은이 다시 추진하는 이번에는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을 정상국가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교황의 북한 방문이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충족돼야 할 대전제가 있다. 한반도 평화와 화해, 비핵화를 촉진하는 방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게 아니라면 종교를 탄압하는 북한 정권에게 면죄부만 주는 꼴이어서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다.

신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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