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쇼기(60·사진)가 차고 있던 애플워치에 그의 피살 당시 상황이 녹음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터키 정부가 사우디 영사관을 직접 도청해 증거를 확보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사우디 개혁을 이끌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이미지는 물론 국제사회에서의 사우디 위상 추락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터키 친정부 매체 데일리 사바는 터키 정부가 카쇼기의 애플워치에 녹음된 파일을 분석해 아랍어를 구사하는 남성들이 그를 고문하고 살해한 정황을 파악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카쇼기는 지난 2일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가기 전에 약혼녀에게 애플워치와 연동된 아이폰을 건넸다. 데일리 사바는 카쇼기가 피살 과정에서 난 소리들이 애플워치에 녹음돼 아이폰과 클라우드 계정으로 자동 전송됐다고 전했다.
터키 정부가 사우디 영사관을 직접 도청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CNN방송 정보보안 전문가 로버트 베어는 “터키 정부는 대부분의 대사관과 영사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감청한다”며 “만약 터키 정부가 카쇼기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영상을 확보한 게 사실이라면 이런 방법으로 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어는 그러나 터키 정부가 불법감청을 했다면 사우디 정부의 범죄 증거를 쉽게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사회에서 사우디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우선 사우디 국부펀드가 오는 23일 다국적기업을 초청해 진행할 예정인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 콘퍼런스가 차질을 빚고 있다. 다라 코스로샤히 우버 최고경영자(CEO)는 “카쇼기 관련 소식 때문에 대단히 불안하다”며 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도 줄줄이 불참 의사를 밝혔다. 미국과 영국 등의 언론들도 현장 취재를 하지 않기로 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리엄 폭스 영국 국제통상장관도 불참 가능성이 거론된다.
빈 살만 왕세자 주도로 개방정책을 강화했던 사우디 입장에서는 뼈아픈 상황이다. 브루스 리들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빈 살만 왕세자는 개혁가 이미지를 빚어내려고 몹시 애썼지만 이제 그 베일이 갈가리 찢겼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우디를 제재하는 데 있어서 여전히 소극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CBS방송 시사프로그램과의 사전 인터뷰에서 “사우디가 카쇼기를 살해한 것이 사실이라면 가혹한 처벌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미 상원 일각에서 거론되는 ‘대(對)사우디 무기수출 금지’ 제재에는 제동을 걸었다.
반면 사우디는 터키 언론이 가짜뉴스로 암살 의혹을 꾸며냈다고 주장했다. 사우디 검찰은 관련 가짜뉴스 유포자는 최대 징역 5년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