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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지호일] ‘심청전’의 뻔한 결말



아마도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기소가 될 것이다. 수사도 끝나지 않았는데 웬 섣부른 예단이냐고? 혐의 유무는 나중 문제이다. 이번 수사가 시작부터 ‘청와대의 수사’로 흐르는 것 같아 하는 말이다. 기획재정부는 비공개 예산정보를 내려받은 심 의원을 고발한 뒤 곧장 이를 공표했다. 여당은 호응해 심 의원을 비판하고, 청와대에서는 “명백한 불법 행위”라는 논평이 나왔다. 당·정·청의 이런 일사불란함은 청와대 의중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여기서 검찰 수사 타이밍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심 의원실 압수수색은 사건 배당 24시간도 채 안 돼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위해”라는 검찰 말보다 유출 자료 신속 회수와 추가 폭로 방지에 일차 목표가 있었을 거라는 법조인들의 해석이 합리적으로 들린다. 청와대가 “회초리로 때리라”며 공개적으로 노기를 터뜨리고, 외곽에선 여론이 포격을 하는 상황에서 검찰이 택할 수 있는 길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다. 공정한 수사 끝에 기소가 합당하다는 판단을 내린다 해도, 이 ‘심청전(沈靑戰)’의 결말은 청와대 지침에 대한 검찰의 화답이란 의심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아직 진상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청와대가) 수사 가이드라인을 또다시 제시했다. 아무래도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라 검찰총장이 하고 싶은 모양이다.” 2016년 9월 국정농단 의혹에 대해 박 전 대통령이 ‘확인되지 않은 폭로’라고 규정하자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논평이다. 청와대의 수사 개입 시도에 계속해서 날을 세웠던 게 지금의 여권이었다.

그런데 국정농단, 적폐청산이라고 이름 붙인 과거 정권 수사를 거치면서 청와대와 검찰 간 경계가 다시 허물어지는 경향이 보인다. 기무사 문건 수사,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 등 정치적 성격이 가미된 수사들은 그 명분과 별개로 청와대의 자기장 안에서 진행되는 인상을 풍겼다.

지금의 청와대가 검찰을 조종하고, 수사 결과를 왜곡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청와대 쏠림 국정운영 방식을 두고 ‘선한 박근혜정부’라는 비판(박상훈, ‘청와대정부’)이 나오는 마당에, 검찰을 움직이는 원리마저 과거와 다를 바 없는 모양으로 비쳐서는 곤란하지 않겠나.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가 검찰 조직 통제를 넘어 사법의 영역인 수사까지 컨트롤하겠다는 뜻은 아닐 터다. 청와대에서 검찰개혁 얘기가 줄어든 것과 현안 해결을 검찰에 맡기는 빈도가 늘어난 현상 간에 모종의 상관관계는 없으리라 믿고 싶다.

지호일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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