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가 15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 출입기자단을 대표해 ‘풀 취재’(취재기자가 많을 때 대표 기자가 취재해 다른 기자들과 내용을 공유하는 것)할 예정이던 탈북자 출신 김명성 조선일보 기자의 취재를 제한해 논란이 일었다. 통일부는 여러 사항을 고려한 판단이라고 했지만 지나친 ‘북한 눈치 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통일부는 우리 측 고위급 회담 대표단이 판문점으로 출발하기 1시간 전인 오전 6시30분쯤 “조선일보에서 풀 취재 기자를 김 기자에서 다른 기자로 교체하지 않으면 풀 취재단에서 배제할 방침”이라고 통보했다. 이에 출입기자단은 “기자단 룰에 따라 대표취재를 맡긴 것이고, 해당 언론사에서 누구를 보낼지는 전적으로 해당 사에 권한이 있다”며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기자가 배제되면서 풀 취재단 4개사 중 3개사만 취재에 나섰다.
조명균(사진) 통일부 장관은 고위급 회담을 마친 뒤 기자단과 만나 김 기자의 취재를 막은 것과 관련해 “이런 상황에 대해선 아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지금이 (남북 간에) 중요한 시점이라는 측면과 상당히 제한된 인원이 조우하게 되는 상황 등을 감안한다면 김 기자가 직접 가는 것은 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과거에도 이런 취재 과정에서의 일 때문에 남북 간 회담에서 차질을 빚은 사례도 있었기 때문에 정무적으로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김 기자는 북한 관련 풀 취재단에 참여한 전력이 있어 통일부의 설명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지난 2월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등 북측 대표단이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차 방남했을 때 김 기자가 풀 취재단으로 활동했다.
북측의 요구로 김 기자가 배제된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통일부는 북측의 항의는 물론 사전 협의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북측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통일부가 북측의 눈치를 살펴 ‘알아서 기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인 김 기자에 대한 차별은 탈북자 처우에 관한 논란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 정착한 3만여 탈북자가 이번 일처럼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기자는 2002년 한국에 들어와 2013년 기자가 됐다.
윤영석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북한의 심기를 살펴서 취한 조치라면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버린 것”이라며 “탈북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통일부가 오히려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이 같은 행태는 탈북민 인권과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는 중대한 헌법위반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