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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현장실습’ 가뭄에 콩… 멀어진 조기 취업의 꿈





수도권의 한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 A양은 요즘 구인 웹사이트를 뒤져보는 게 일과다. 선생님이 알려준 교육부 특성화고 포털 ‘하이파이브’ 웹사이트에 올라오는 기업 채용 공고가 없어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이트를 찾아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지만 신규 공고는 업데이트되지 않는다. 졸업한 언니들은 지난해 하루에도 5∼6건의 채용 공고를 봤다고 했지만 최근 들어 ‘고졸예정자 채용’ 공고는 가뭄에 콩 나듯 했고, 그나마 영세기업뿐이었다. 이대로라면 올해 안에 ‘취업(현장실습)’을 나갈 수 있을지도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A양이 맞닥뜨린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지난해 11월 이미 친구들 사이에선 “취업을 못 나갈 수 있다” “현장실습을 해도 돈은 못 번다”는 말이 돌았다. 제주도의 한 생수공장에 현장실습 나갔던 특성화고 학생 이민호군이 압착기에 눌려 숨진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정부 정책이 바뀌었다는 소식에도 선생님들은 한숨만 쉴 뿐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기우(杞憂)이길 바랐지만 1년 만에 현실이 됐다.

정부가 요건을 대폭 강화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이후 특성화고 학생들의 기업 현장실습 참여가 1% 아래로 쪼그라들었다. 추가 비용 부담을 피하려는 기업들이 실습생을 받길 꺼려 기회 자체가 줄었다. 학생들도 현장실습을 유지하는 기업이 적다보니 원하는 전공과 무관한 업종에 나서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나마 임금도 받을 수 없으니 참여가 적극적이지 않다.

그동안 졸업 후 현장실습 업체에 곧바로 취업하는 경우가 많아 이 같은 변화는 특성화고 취업률 하락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특성화고 존폐 위기로 이어질 우려까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실습생을 ‘교육’과 ‘노동’ 중 한 가지 잣대로만 바라보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일보가 15일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특성화고 현장학습은 그야말로 씨가 마른 수준이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현장실습에 참여한 기업은 517곳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기준으로 지난해는 1만1403곳, 2016년은 1만4429곳이 참여했었다. 현장실습을 늦게 시작하는 기업도 상당할 걸로 보이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비교가 민망할 정도다.

현장실습에 참여한 학생 수도 급감했다. 올해는 지난달 말까지 전국에서 1004명뿐이었다. 현장학습 대상 학생 10만1190명의 0.99% 수준이다. 예년과 비교해봐도 지난해 같은 기간의 4.5%, 2016년 같은 기간의 3.8%에 그친다.

그동안 특성화고 학생들 사이에서 현장실습은 사실상 ‘취업’과 같은 의미로 사용돼 왔다. 박정희정부가 1973년 산업교육진흥법을 개정하며 시작된 현장실습은 학생들에겐 일찌감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산업현장에는 값싼 노동력을 공급받는 수단으로 작용해 왔다. 2000년대 들어 노무현정부가 현장실습 조건을 강화했지만 이명박정부가 이를 폐기해 원점으로 돌아섰다. 학생들은 현장실습 나갈 때면 “취업 간다”고 말해 왔다.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11월 이민호군 사건이 벌어진 이후 ‘학습형 현장실습’을 발표하면서 현장실습 성격을 ‘학습’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현장실습은 더 이상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고 직업교육훈련촉진법만 적용받게 됐다. 최대 현장실습 기간도 이전 6개월이던 것을 3개월로 줄였다. 지난 2월 발표된 추가 대책에서 정부는 기업이 조기 취업 형태 현장실습을 운영하려면 ‘선도기업’으로 신청해 시·도교육청 승인을 받도록 했다. 기업마다 현장실습 전담 지도자 직원을 둬야 한다. 커리큘럼에 따른 교육만 이뤄질 뿐 원칙적으로 노동은 할 수 없다. 기업에서 지급하는 건 임금이 아닌 현장실습지원비다.

규모가 작은 업체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사원 80∼90명 규모의 경기도 지역 한 제조업체는 지난해 인근 특성화고에서 실습생 2명을 받아들여 현장실습 후 사원으로 채용했지만 올해는 포기했다. 이 기업 관계자는 “인력 하나하나가 당장 아쉬운 마당에 일을 시킬 수도 없는 실습생들을 교육시키는 데 기존 직원을 투입하면 부담이 배가되는 셈”이라며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도 적고, 그나마 실습생 교육비로 나가 소용없다”고 했다.

중소기업 관계자들은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갖춘 곳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지적한다. 당사자인 특성화고 학생들은 자신들이 보기에도 허무맹랑한 정책이라며 더욱 비판적이다. 특성화고 진학 목적인 ‘빠른 취업’ ‘진학비용 마련’ 등의 현실은 고려하지 않고 취업 기회가 줄어들 게 뻔한 정책만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또 다른 특성화고 3학년 B양은 “애초 특성화고 입학 당시 현장실습에서 돈을 벌어 이후 대학 진학 등록금으로 쓰려고 했는데, 정책이 바뀐 뒤 학교에서는 현장실습은 아예 하지 않고 면접이나 자기소개서 준비 등 ‘취업스킬’ 교육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B양은 “학교에선 시간낭비 교육만 받는다. 어떻게든 돈을 벌려고 공원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방의 특성화고에 다니는 3학년 C군은 최근 학교로부터 내년 1월에야 현장학습을 할 수 있을 것이란 통보를 받았다. 실습 현장은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공장이다. 선배들 절반 가까이가 끝까지 버티지 못했던 곳이지만 지원 가능한 업체가 워낙 줄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했다. 애초 입학 때부터 희망했던 디자인 계열 업종은 고민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C군은 “회사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식대가 제공되는지도 아직 모른다”며 “(속칭) ‘호구’가 된 것 같다”고 했다.

편법도 자행되고 있었다. 특성화고생 D군은 현재 같은 반 친구와 현장학습을 하는 경기도 지역 한 공사 현장에서 먹고 자며 하루 8시간씩 일을 직접 돕고 있다. 애초에 기업과 학교 사이 합의된 일당(현장실습지원비)은 3만원이지만 D군은 업체로부터 별도로 시급 8000원을 받는다. D군 선생님은 직접 모든 업무를 다양하게 습득해야 하는 건설업종 특성을 고려해 이를 눈감아주기로 했다.

현장실습 제도의 변화는 고용한파와 맞물리면서 취업률 급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에 따르면 올해 특성화고 취업률은 65.1%로 지난해보다 10% 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진숙경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자리의 질과 안전성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예전에는 현장실습을 통해 취업이 보장되는 측면이 많았는데 대안을 마련해놓지 않고 무작정 (일자리를) 축소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장실습 안전 문제는 그것대로 해결하면서 취업지원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전혀 도입되지 않았다”며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경우 학생들이 외면해 특성화고에 존폐 위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 사안을 노동과 학습의 대결구도로 보는 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실을 무시하고 현장실습이 지니는 ‘노동’으로서의 속성을 인정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상현 특성화고권리연합회 이사장은 “억지로 현장학습이 지니는 노동으로서의 성격을 부정하기보다 이를 수용하고 더 적극적으로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일례로 독일의 연소근로자보호법처럼 미성년자 노동을 정의하고 여기에 현장실습까지 포함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지금처럼 기업에 임금 지원만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안전한 노동환경을 마련하는 데 대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걸 고려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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