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비핵화 진전 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주요 7개국(G7) 주도국인 프랑스가 대북 제재 완화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설득에 나선 것이다.
문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대통령궁)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관계 발전과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집중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평양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세 차례 정상회담 결과를 마크롱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이 상응 조치에 나설 경우 핵·미사일 실험중단, 생산 시설 및 보유 핵무기·핵물질 폐기 의사를 밝혔다”며 “비핵화의 실질적 조치들이 이뤄진다면 유엔 제재를 완화해 북한의 비핵화를 더욱 촉진해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이 역할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양 정상은 정상회담 후 26항으로 이뤄진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공동선언 3항에 따르면 양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CVID)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는 데 강력한 환영 의사를 밝혔다. 양 정상은 한반도의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 정착 목표를 평화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계속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특히 문 대통령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가 중요한 역할을 해 줄 것을 희망하는 내용도 명기됐다.
공동선언에 ‘CVID’가 명기된 데 대해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프랑스 입장에서는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쓰인 문구를 그대로 인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또 유럽연합(EU) 회원국으로서 EU공동 외교안보정책을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우리는 4·27 판문점 선언과 6월 북·미 싱가포르 센토사 합의의 역사적 의미에 공감하고, 남·북·미의 진정성 있는 이행 조치를 높이 평가했다”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과정에서 EU 핵심 국가인 프랑스의 선구적인 역할과 기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 정상은 미국의 철강 분야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여파로 EU가 한국산 철강 제품에 세이프가드 잠정 조치를 발표한 점도 논의했다. 문 대통령은 “EU로 수출되는 한국산 철강 제품은 대부분 EU 내 한국 기업이 투자한 공장에 공급돼 생산 증대와 고용에 기여하고 있다”며 “세이프가드 최종 조치 채택이 불가피하더라도 조치 대상에서 한국산 철강을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다. 양 정상은 이외에도 외교·안보·국방·경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개선문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한 뒤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했다. 이어 샹젤리제 거리 1㎞ 구간에서 카퍼레이드를 하고 엘리제궁으로 이동했다. 두 정상은 정상회담에 앞서 엘리제궁 앞뜰을 산책하고 야외 탁자에서 환담을 나누며 우의를 다졌다.
문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 내외가 주최한 국빈만찬 연설에서 “마크롱 대통령과는 같은 시기에, 닮은 모습으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지향하는 가치도 비슷하다”며 “대통령 말씀처럼 쌍둥이 같기도 하다. 연장자인 제가 득을 많이 보는 것 같다”며 친근함을 표시했다.
문 대통령은 또 리샤르 페랑 하원의장도 면담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프랑스 의회의 협력을 당부했다. 페랑 의장은 마크롱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파리=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