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설’ 하면 한 가문의 가계도를 펼쳐놓고 읽는 장구한 대하소설이나 기구한 현실을 풍자한 소품 정도의 이미지가 있다. ‘책물고기’에 실린 중단편 5편은 그런 편견을 단박에 깬다. 신비(神秘)를 자아내면서도 어떤 날카로움을 간직한 작품들이다. 중국 개혁·개방기에 풍요롭게 성장한 ‘바링허우 세대’ 대표 작가 왕웨이롄(36·사진)의 소설집이다.
‘소금이 자라는 소리를 듣다’에서 주인공 ‘나’는 중국 서부 내륙의 한 소금호수에서 일한다. 나는 호수에서 시체로 떠오른 동료의 얼굴을 보고 두려움에 떤다. 그가 숨지기 전날 함께 술을 마셨지만 내겐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죄책감이 나를 옥죄고, 나는 악몽에 시달린다. 어느 날 고교 시절 친구가 여자 친구와 함께 나를 찾아오고, 내 얘기를 들은 그 여자 친구는 “그러면 당신이 그 사람을 죽였다고 생각해도 되겠다”고 한다. 그날 밤, 나는 꿈에서 소금이 자라는 소리를 듣는다.
“사방에서 미세한 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마치 어떤 것이 자라나고 있는 소리 같았다. …소금이 바로 생명 없는 일종의 생명이었다. 조물주 앞에서 우리와 소금이 무슨 본질적인 차이가 있겠는가.”
광대한 소금호수는 내게 아름다움에 대한 지향과 좌절을 담고 있는 곳이다. 그 호수 앞에서 괴로워하던 나는 존재의 본질을 어렴풋이 깨닫고 점차 평온을 회복한다.
‘책물고기’는 한 출판사 편집자가 책 속에서 책벌레 ‘서어(書魚)’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목소리가 계속 메아리치는 것에 당황한 ‘나’는 유명한 한의사를 찾아간다. 이 한의사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나를 치료하고 이렇게 말한다. “자네는 운이 좋아. 책이 줄어들어 책벌레도 보기 힘들어졌는데 신비한 책물고기와 마주치지 않았나.”
책을 둘러싼 우화가 분명한데도 실화로 착각할 만큼 실감 난다. 조상을 기리기 위해 여행길에 나선 할머니와의 수다(‘걸림돌’), 광저우에 대한 애정을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아버지(‘아버지의 복수’) 등 5편의 주제는 제각각이다. 게다가 흥미로운 배경과 독특한 구성 때문에 한 작가의 작품집이라는 게 신기하게 느껴진다.
세계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문학에 대한 투철한 목적의식이 이런 다채롭고 치열한 작품을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 대학 시절 물리학에서 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꾼 작가는 박사 과정에서 중문학을 공부했다. 자연과학에서부터 인류문화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문학을 통해 “정신의 내핵이 존재하는 곳”에 이르길 바랐다고 한다.
그는 2016년 한 인터뷰에서 “나는 단순한 수사의 쾌락에서 떨어져서 언어와 사상의 가능성을 더 중시한다. 세상이 아무리 화려하고 눈부셔도 나는 여전히 언어의 힘과 기호의 힘은 인류의 어떤 심층적인 본질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고 했다. 이 말대로 그의 작품은 인간의 본질에 다가선다. ‘인간은 조물주 앞에서 소금처럼 자라나고 쇠락하는 변화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고통은 인간에게 삶의 일부이자 사랑의 일부다’. 책에 나오는 말이다. 형이상학을 담은 이야기는 사변적으로 흐르기 쉽지만 이 작품들은 그 반대다. 기발한 상상과 유머(‘책물고기’)에 쿡쿡 웃게도 하고, 이을 수도 끊을 수도 없는 감정(‘베이징에서의 하룻밤’)에 울게도 한다. 괴이한 힘을 발산하는 소설집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