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반발에도…정부 대북 제재 완화 ‘진입로’ 찾기 나섰다



유럽을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 제재 완화 필요성을 공론화한 이후 정부와 여당에선 한·미 견해차를 크게 개의치 않는 발언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북한이 제재 완화로 타깃을 옮기고, 한국이 이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한·미 간 시각차는 더욱 부각되는 양상이다. 정부는 이미 대북 제재 완화 시점과 방법론을 다양하게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17일 “북한은 리용호 외무상의 9월 말 유엔총회 연설을 기점으로 종전선언에서 제재 완화로 전략을 갈아탔다”며 “정부는 이에 맞춰 제재 해제를 위한 조건, 시점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재 완화 시점은 비핵화가 불가역적인 단계로 진입하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며 “남북은 그 단계를 영변 핵시설 폐기로 보는 데 컨센서스를 이뤘지만 미국은 이에 부정적”이라고 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간 채널이 여태 가동되지 않는 것도 미 정부가 제재 문제를 테이블에 올릴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재 문제에 있어선 남북이 정도 차이는 있지만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미국이 제재를 어느 정도 풀어야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할 수 있고, 나아가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남북이 추진하는 관계 개선 사업들도 제재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이날 한·미의 ‘일치된 목소리’를 강조한 건 남북 관계 과속에 대한 경계인 동시에 현 시점에서 제재 논의는 신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미국은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이끌어 낸 일등공신이 강력한 제재라고 보고 있다. 때문에 완전한 비핵화 전까지는 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더딘 상황에서 한국이 제재 문제를 이슈화할수록 한·미 간 견해차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우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완화를 목표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독자제재는 행정명령과 관련법이 얽히고설켜 의회 동의 없이 정부가 풀기 어렵게 돼 있다. 2016년 제정된 대북제재강화법에 제재 해제를 위한 조건이 명시돼 있는데, 여기엔 핵·미사일뿐 아니라 대량살상무기(WMD), 생화학무기, 인권 문제 등이 광범위하게 포함돼 있어 이를 충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정부 내에선 미 의회가 특별법을 만들어 일정 기간 제재를 유예하는 방안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논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 역시 결정권은 의회가 쥐고 있고, 미 중간선거(11월 6일) 이후 상·하원이 어떻게 재편될지도 알 수 없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비해 안보리 제재에는 ‘북한의 준수 여부에 따라 (제재) 조치를 강화, 수정, 중단 또는 해제할 준비가 돼 있음을 확인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북한이 유의미한 비핵화 조치를 취하고, 이를 안보리 회원국이 평가하면 해제할 수는 있는 셈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 국정감사에서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스몰 기프트(작은 선물)를 줘야 한다”며 유엔 조치를 언급한 것도 이를 겨냥한 것이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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