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로 부상한 대북 제재 온도차, 한·미 대사의 같은 날 다른 소리



남북 관계 진전과 대북 제재 완화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의 불협화음이 공개적으로 표출되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대사들은 남북 관계와 북한 비핵화의 동시 진전 여부에 대해 다른 말을 내놓았다. 한·미 간 물밑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 정부로선 철도·도로 연결 사업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미국을 설득해야 하는 무거운 숙제를 안게 됐다.

조윤제 주미대사는 16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서울·워싱턴포럼’ 기조연설에서 “남북 관계와 비핵화가 항상 기계적으로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는 없다”며 “한쪽의 모멘텀이 다른 쪽 프로세스를 견인해 선순환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남북 관계가 북·미 협상보다 조금 앞서나갈 경우 한국이 레버리지를 갖고 촉진자 역할을 해 북·미 협상 정체를 풀어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워싱턴포럼은 세종연구소와 미 외교협회(CFR)가 공동주관한 행사다.

조 대사의 이런 언급은 “남북 관계 개선은 비핵화와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는 미국 국무부의 기본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미국에 대해 “이제는 할 말을 하겠다”는 스탠스로 전환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조 대사는 연설에서 “남북 관계가 비핵화 과정에 따라 진행돼야 하며 그 과정에서 국제 제재를 충실하게 이행한다는 것이 우리 정부 입장”이라며 “남북 협력은 국제 제재의 틀 내에서 추진될 것”이라고 미국을 안심시켰다. 그러면서도 “남북 관계와 비핵화가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 또한 우리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17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남북 대화는 비핵화와 연계되고 한국과 미국의 목소리가 일치해야만 공동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한국 정부가 남북 관계 개선을 우선순위로 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전제한 뒤 “미국과 한국이 계속해서 북한 문제에 공동의 목소리로 접근한다면 평양과 판문점, 싱가포르에서의 약속을 현실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리스 대사가 ‘일치된 목소리’를 거듭 강조한 것은 미 행정부 입장을 한국 정부가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모스크바에서 이고리 모르굴로프,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을 만나 북한의 밝은 미래를 위한 단계를 밟아나갈 수 있도록 전적으로 조율된 의사소통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을 강조했다고 국무부가 밝혔다.

한편 조태열 유엔주재 대사는 유엔대표부 국정감사에서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이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에 위반되는지 여부에 대해 “판단 주체는 안보리 대북제재위”라면서도 “본격적으로 연결 사업이 진행되면 제재 위반 소지가 있는 요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이상헌 기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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