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바티칸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에 참례하고 기념 연설에서 한반도 평화구축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근 남북 관계 급진전으로 한·미 간 일부 불협화음이 나오는 가운데 유럽을 북·미 협상의 지원군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정상외교의 일환이다.
문 대통령은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추기경)이 집전한 특별미사 기념 연설에서 “인류는 그동안 전쟁이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써왔다”며 “한반도에서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은 지구상 마지막 냉전체제를 해체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한반도에서는 역사적이며 감격스러운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지난 9월 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한반도, 평화의 한반도를 전 세계에 천명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비무장지대(DMZ) 무기·감시초소 철수, 지뢰제거 등을 언급하며 “지금 남북은 약속을 하나씩 이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 간 합의가 실천되고 있는 만큼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도 믿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유럽의 지지를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기독교와 유럽 문명이 꽃피운 인류애가 시공간을 뛰어넘어 한반도에 용기를 줬다. 유럽연합(EU)이 구현해온 포용과 연대의 정신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향한 여정에 영감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를 갈망하며 형제애를 회복하고 있는 남북 모두에게 커다란 용기와 희망을 준 교황 성하와 교황청에 깊이 감사드린다”면서 “오늘 우리의 기도는 현실 속에서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 우리는 기필코 분단을 극복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파롤린 국무원장은 미사 강론에서 “이 저녁 우리는 주님께 온 세상을 위한 평화의 선물을 간청하고자 한다”며 “오랫동안 긴장과 분열을 겪은 한반도에도 평화라는 단어가 충만히 울려 퍼지도록 기도로 간구하자”고 말했다. 이어 “세상이 평화를 사랑하고, 평화를 건설하며, 평화를 방어하도록 세상에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교황청 수교 55주년을 맞아 열린 미사에는 교황청 주요 인사와 외교단, 재이탈리아 동포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우리 대통령이 교황청 특별미사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을 단독 면담하고 김 위원장의 방북 초청을 전달할 예정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우군으로 유럽을 끌어들이기 위한 최대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에 이어 영국과도 정상회담을 갖고 북·미 협상 지지를 호소할 예정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미 사이 톱다운 방식의 비핵화 논의가 이뤄지는 데 비해 유럽은 (선 비핵화라는) 완고한 입장을 지니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하지만 유럽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북·미 협상이 흔들릴 때도 안전장치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마=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