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타결 조짐을 보였던 영국과 유럽연합(EU)의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협상이 결국 이번에도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국경, 관세 등 민감한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했다. 영국과 EU 국가들 내에선 영국이 아무런 협상 없이 EU를 떠나는 ‘노딜(No-deal) 브렉시트’를 대비한 비상 플랜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영국의 브렉시트 전환 기간을 1년 연장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17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협상에 대해 “다같이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면서도 교착 상태를 풀 수 있는 중재안은 제시하지 않았다.
안토니오 타야니 유럽의회 의장은 “메이 총리의 연설에 새로운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비판했다. 미셸 바르니에 EU 측 협상 대표는 “협상 타결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영국과 EU의 협상시한 마감은 당초 10월 말이었지만 연말까지 이를 연장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영국과 EU는 이번 협상에서도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EU는 브렉시트 이후에도 북아일랜드를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영국 측은 북아일랜드가 단독으로 EU에 잔류하면 국가 주권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딜 브렉시트 현실화에 대한 우려가 번지면서 EU 국가들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정부 차원에서 노딜 브렉시트에 대한 비상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메르켈 총리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며 “여기에는 영국이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벨기에 폴란드 룩셈부르크 등 다른 EU 회원국 정상들도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U는 최근 영국에 브렉시트 전환기간을 1년 연장할 것을 비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이 총리는 EU 정상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브렉시트 전환기간을 수개월 정도 연장하는 방안이 이 시점에서 부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영국과 EU는 브렉시트가 시작되는 내년 3월부터 2020년 말까지를 브렉시트 전환 기간으로 정했다. 이 기간 동안 영국은 EU에서 탈퇴하더라도 EU 회원국들과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 교역할 수 있다. 일종의 ‘브렉시트 적응기’다.
EU의 제안은 노딜 브렉시트가 부상하는 상황에서 아일랜드-북아일랜드 국경 문제 등 주요 쟁점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하지만 하드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영국 보수당 강경파들은 영국이 EU의 속국으로 계속 남을 수 있다는 이유로 전환기간 연장론에 반발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