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에 갔으면 좋겠어요.”
“중국에 있는 가족들을 봤으면 좋겠어요.”
지난 19일 전북 전주대학교 대학원 건물 6층의 한 강의실. 16∼17명의 학생들이 교수가 읽어주는 문장을 따라 읽고 있었다. 칠판에는 ‘채소’ ‘주방용품’ ‘목도리’ 등의 단어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한국어 수업 시간에 눈을 반짝이고 있던 이들은 20∼40대로 연령대도 퍽 다양했다. 이들은 중국 허베이(河北)성 내 5개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수들로 지난해와 올해 전주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온 유학생들이었다.
지역 대학들이 박사 학위가 없는 중국내 대학 교수들을 위한 박사과정 프로그램을 잇달아 마련하고 유학생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연구기능 강화와 중국 대학과의 국제교류 폭을 확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신입생 부족 사태에 대한 대응의 뜻도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특히 전북지역 대학을 중심으로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선도하고 있는 대학은 전주대다. 전주대는 2012년 대학원 선진화와 활성화 일환으로 중국 허베이성 교육청과 협약을 체결했다.
이듬해 특별반을 개설하자 첫해 7명을 시작으로 해마다 6∼8명의 석사 교수들이 전주를 찾았다. 그동안 30명이 학기를 마쳤고 현재 17명이 교육 분야 전공을 공부하고 있다. 모두 허베이성 교육청에서 선발된 사람들로 39명이 교수고 8명은 교원이다.
원광대에서는 현재 150여명의 중국 교수들이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올해 1학기 42명에 이어 2학기 72명이 입학했다. 이 대학 국제교류과 김태형씨는 “김도종 총장이 중국 대학을 여러 차례 방문해 홍보한 이후 지난 학기부터 장쑤(江蘇)성 주장(九江)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교수들이 대거 찾아오는 성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7일 전북대에서는 색다른 환영식이 열렸다. 중국 11개 대학에서 온 교수 24명이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온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왕동핑(王冬平·31·중국소관학원) 교수 등은 앞으로 3년간 국내에 머물며 전공별로 박사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전북대는 이 프로그램에 ‘드래곤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밖에 전남대도 지난달 중국 원저우(溫州)대와 공동 박사학위 프로그램을 운영키로 합의했다.
하지만 어설프고 부실한 운영으로 외교 문제를 일으킨 경우도 있다. 최근 일부 지방대학은 중국인 등을 대상으로 ‘집중이수제’ 등을 운영했다가 망신을 샀다. 학기 중 인터넷 강의를 하다가 방학 때는 하루 12시간씩 수업을 진행해 한 학기 과정을 12일 만에 끝냈다가 중국 측으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았다. 말이 좋아 ‘속성 교육’이지 노골적인 학위 장사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일부 학교의 부실한 운영 등이 문제를 빚긴 했지만 앞으로도 중국 교수들의 한국행 물결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잘만 운영하면 양국 대학들의 이해가 맞닿아 있어 ‘윈-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윈-윈’의 출발은 중국 대학 교수 중 상당수가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중국 대학들은 교수의 경쟁력 확보와 대학 평가에 대비하기 위해 교수 중 박사학위 소지자 비율을 높이려고 해외 유학을 권장·지원하고 있다. 중국 교육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지난해 5월말 현재 중국에 있는 대학은 2631개, 교수는 163만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교수 가운데 70% 이상은 박사학위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대학 관계자들의 방한이 줄을 잇고 있다. 다음 달 12∼16일에도 중국 내 12개 대학의 관계자 25명이 전주대를 비롯해 서울과 부산의 대학을 방문해 관련 프로그램을 긴밀히 협의할 예정이다.
전북지역 대학들은 이 같은 추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동력을 모으고 있다. 국제화 추진은 물론 중국 내 친한파 양성, 그리고 학교 재정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이러한 좋은 기회를 그냥 넘겨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각 대학은 중국 교수 유학생들의 만족도와 성취감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후원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전주대는 1대1 호스트패밀리를 선정해 돕도록 하고 있다. 전북대는 중국인 대학원생을 통해 학습·통역 지원을 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박사과정은 녹록치 않다. 전북대 유학생들은 언어교육부에서 하루 3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한국어 학습을 받아야 한다. 전주대의 경우 3년간 대학 기숙사나 인근 원룸 등지에서 생활하며 한 학기에 9학점씩 수업을 듣고 논문을 써야 한다. 이 대학 전진성 대학원 행정실장은 “1·2학기엔 중국어 통역을 통해 수업을 하지만, 3학기부턴 통역 없이 한국어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벅찬 공부와 외국생활이 버겁지만 유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전주대에선 그동안 30명이 학기를 마치고 20명이 논문심사를 통과해 꿈에 그리던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 가운데 당산공업직업기술학원의 장지엔쥔(張建軍·43) 교수는 지난 8월 출신 대학의 총장이 됐다. 지난 3월 입학한 하북중의학원 런리쿤(任麗坤·30·여) 교수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심리학과엔 7명의 교수가 있는데,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교수는 한 명도 없다”며 “한국과 전주의 생활에 보람을 느끼고 공부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