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차 정상회담을 지연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조만간 열릴 북·미 고위급 회담의 결과가 향후 협상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고위급 회담을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사진)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방미할 경우 협상의 새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도 흘러나오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9일(현지시간) 멕시코에서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열흘 뒤에(in the next week and a half or so) 나의 북한 카운터파트와 고위급 회담을 여기(here)서 갖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또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곧 열릴 것으로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면서도 “아직 날짜가 정해지지 않아 언제라고 말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가 언급한 ‘여기’가 미국이라는 해석이 많다.
고위급 회담이 미국에서 열린다면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10월 7일) 이후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협상이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전망이다. 특히 4차 방북 때 김 위원장이 폼페이오 장관의 카운터파트였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대신 여동생을 배석시킨 점에 비춰 이번 고위급 회담에 김 제1부부장을 파견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이 백두혈통인 여동생을 보낼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신뢰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비핵화 실천 의지 측면에서도 더 센 ‘보증’을 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아울러 협상 재량권도 더 커지고, 미국에 강경파로 찍힌 김 부위원장이 뒤로 한 발 빠져 있다는 점도 부각시킬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김여정의 방미는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에 대한 북한의 의지를 드러낼 수 있는 카드”라며 “지난 1월 방남 당시 엄청난 주목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김여정의 첫 방미가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북 제재와 비핵화 선조치를 둘러싼 북·미 간 기싸움은 여전하다. 미국은 2차 정상회담이 11월 6일 중간선거 이후로 미뤄진 상황에서 시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내년 1월 1일 이후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20일 네바다주 엘코에서 열린 정치유세에서 북핵 문제에 대해 “잘될 것”이라며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다만 미 국방부가 12월 개최 예정이던 한·미 연합 공중훈련 ‘비질런트 에이스’를 19일 연기한다고 발표한 것은 일단 북한과의 대화 모멘텀은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문제는 향후 비핵화 협상에서 북·미가 얼마나 양보할 수 있느냐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지금 북·미는 다시 데드록(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이라며 “미국이 원하는 핵 신고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반출과 북한이 원하는 대북 제재 완화 및 종전선언을 놓고 양쪽이 얼마나 양보할지가 관건”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우리 측 북핵 협상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1∼23일 워싱턴DC에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만나 북·미 후속대화 추진 계획을 논의한다.
최승욱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