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책임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국민연금이 일본 전범기업 투자액을 5년 새 3배 가까이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특정 기업 투자를 배제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국민연금공단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12월 기준 75개 전범기업에 1조5551억원을 투자했다. 2013년 51개 전범기업에 6008억원을 투자한 것과 비교하면 총 투자액이 2.6배 증가했다.
기업별 투자액은 도요타자동차가 3604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국민연금은 이어 건설중장비업체인 고마쓰 제작소에 1581억원을, 영화 ‘군함도’의 실제 배후 기업인 미쓰비시 계열사에 1252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 국감에서 전범기업 투자가 문제로 지적되자 국민연금은 “위탁투자여서 조정이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지난 5월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밝힌 입장을 보면 위탁투자라고 모두 조정이 어렵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당시 “위탁운용사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이슈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술, 도박, 담배 관련 기업에는 투자를 배제하고 있다”고 했다.
전범기업 투자가 고수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국감자료에서 “투자 대비 손해가 발생한 전범기업의 비율이 2013년 31.4%, 2014년 45.9%, 2015년 55.8%, 2016년 38.0%, 2017년 17.3%”라고 밝혔다.
해외에선 인권적 요소를 고려해 투자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GPEG)의 경우 심각한 인권침해를 이유로 미국과 인도, 이스라엘, 멕시코 등의 기업에 대한 투자를 금지했다. 스웨덴 국민연금기금(AP4)도 국제인도법 위반, 노동자 인권침해 사유로 특정 기업 투자를 막고 있다.
국회에는 국민연금의 전범기업 투자를 전면 금지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남 의원은 “최근 5년간 투자 현황을 보면 국민연금이 법 개정 없이 자생적으로 전범기업 투자를 줄이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직접 투자제한 기업을 지정하는 건 기금운용 독립성 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내부 투자지침으로 (투자 금지를) 실시하는 게 적절하다”고 제안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