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나가 히로시 교수 “청사진이었던 부국유덕 뜻 깊이 새겨야”



요코이 쇼난(橫井小楠·1809∼69)은 유신 전야 ‘부국유덕(富國有德)’을 새 정부 청사진으로 내놨다. 그러나 그의 제안은 관철되지는 못했다. 쇼난 연구가인 도쿠나가 히로시(68·사진) 구마모토학원대 초빙교수에게 그 배경을 들어봤다.

-쇼난은 누군가.

“구마모토 번사 출신으로 1868년 4월 메이지정부 산요(參與·국무대신)로 취임하나 이듬해 1월 살해됐다. 그는 1862년 ‘국시(國是) 7조’를 비롯해 여러 정책 청사진을 내놨다.”

-청사진의 핵심은.

“공화제에 입각한 헌법 제정과 의회 설치, 고른 인재 등용, 대외 교역 확대 등이다. 특히 그는 부국강병보다 부국유덕의 요순시대 정치를 이상으로 생각했다.”

-부국강병과 부국유덕은 어떻게 다른가.

“부국강병은 ‘부유한 나라 강한 군사력’을 뜻하나, 부국유덕은 ‘부유하면서도 덕이 있는 나라’를 중시한다. 부국유덕은 왕도(王道)를, 부국강병은 패도(覇道)를 좇는 것이다.”

-메이지정부는 부국강병 외길로 달려왔다고 보는데.

“맞다. 쇼난의 사상에 공감했던 이들은 가쓰 가이슈,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등이다. 그러나 가쓰를 빼고는 이들 모두 일찌감치 살해되거나 자결해 부국유덕의 정신이 새 정부에 뿌리내릴 수 없었다.”

-쇼난 등이 건재했다면 메이지는 달라졌을까.

“그랬을 것이다. 1998년 취임한 오부치 게이조 총리는 쇼난의 ‘부국유덕국가’를 자주 거론하고 평화국가를 지향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 또한 2000년 병사해 아쉽게 됐지만, 일본 사회가 전후 평화국가 일본을 중시한다면 유신 150년을 맞은 지금 부국유덕의 뜻을 깊이 새겨야 한다.”

구마모토=글·사진 조용래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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