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진(47)은 작품을 고르는 눈이 남다른 배우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채운 작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아마도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그에게는 확고한 기준이 있다. “저는 연출이 누구인지 봐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잘하는 사람이랑 일하는 게 너무 좋아요.”
영화 ‘완벽한 타인’으로 돌아온 이서진을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우정출연한 ‘오늘의 연애’(2015)를 제외하면 ‘무영검’(2005) 이후 13년 만의 스크린 복귀다. 그는 “잘못 선택했다 결과가 안 좋으면 더 기회가 생기지 않을 것 같아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완벽한 타인’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역시 이재규 감독이었다. 드라마 ‘다모’(MBC·2003)로 영광의 시절을 함께한 두 사람의 15년 만의 재회다. “이 감독이 제안을 했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워낙 스마트한 사람이고 ‘잘 만드는’ 감독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확신이 있었죠.”
유해진 조진웅 염정아 김지수 등 베테랑 배우들의 합류는 큰 힘이 됐다. 이서진은 “사실 시나리오만 봤을 땐 ‘이 얘기가 재미있을까’ 싶었는데 배우들과 합을 맞춰보니 살이 붙기 시작하더라”며 “한 달 동안 합숙을 해 진짜 친구처럼 친해졌다. 나중엔 실제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놀 듯이 찍었다”고 회상했다.
“영화 촬영은 드라마에 비해 아무래도 만족감이 크죠. 90% 이상이에요. 배우 입장에선 좋을 수밖에 없어요. 드라마는 시간에 쫓겨 대충 넘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영화는 연기뿐 아니라 조명 앵글까지 최상의 상태로 만드니까요. ‘완벽한 타인’을 드라마처럼 찍었으면 아마 하루 만에 다 찍었을 걸요(웃음).”
극 중 이서진이 연기한 레스토랑 사장 준모는 달달한 신혼이다. 한데 타고난 위트와 나이스한 분위기 때문에 항상 주변에 이성이 따른다. 한마디로 바람둥이. “아마 예전 같았으면 이런 역할이 안 들어왔을 거예요. 예능 출연으로 친근한 이미지가 생기면서 폭이 넓어졌죠. 제게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요.”
본인의 말처럼, ‘삼시세끼’ ‘꽃보다 할배’ ‘윤식당’(이상 tvN) 등 나영석 PD와 함께한 예능 프로그램이 연달아 히트를 치면서 이서진은 딱딱한 엘리트 이미지를 얼마간 지워냈다. 겉으로는 툴툴대도 속 깊고 따뜻한 인간적 매력이 부각되면서 대중적인 호감을 얻게 됐다.
이서진은 “확실히 친숙해진 것 같다. 길 가다 만나면 반갑게들 인사를 해주신다. 특히 연세 많으신 분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시더라”고 웃었다. 이어 “나 역시 홀가분해졌다. 관심 가져주면 고맙고 아니면 말고. 예민하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나이 들수록 더 편안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지금은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한다는 그다. 혼자인 일상에 너무도 익숙해졌다. 그만의 루틴이 있다. 아침부터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치과나 피부과를 찾는다. 영양제는 아침저녁으로 10개씩. “저는 해 떠있을 때 집에 있는 게 싫어요. 정해진 시간표가 있죠. 하루에 쉴 틈이 없어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