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절벽 : 실업자 수 1∼9월 평균 117만7100명
투자 한파 : 건설투자 외환위기 이후 최대 감소폭
수출 흔들 : 이제 버팀목 반도체마저 안심 못해
주가 폭락 : 경기 둔화 가늠자… 올들어 18% 낙폭
“한국의 2019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로 자르겠다.” 지난 25일 한국은행이 올해 3분기 실질 경제성장률을 2.0%로 발표하자 글로벌 투자은행(IB)인 ING그룹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의 내년 성장률을 낮춰 잡았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9년 만에 최저 수준인 3분기 성장률이지만, ING그룹은 “전혀 놀랍지 않다”고 했다.
ING그룹은 한국 경제의 영향력이 미치는 대만과 싱가포르 시장을 주의하라고까지 밝혔다. “약점들을 감안하면, 그 지역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ING그룹은 다음 달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예견했다. 경기 둔화를 고려하면 기준금리 인상을 기대하는 이들이 완전히 분위기 파악을 잘못한 것이라고도 했다.
ING그룹뿐만이 아니다. 도이체방크(2.3%), 소시에테제네랄(2.4%) 등이 내다보는 한국의 내년 성장률(전망치)은 한은이나 한국개발연구원(2.7%)보다 비관적이다. 영국의 시장조사회사인 캐피털 이코노믹스도 한국의 내년 성장률을 올해보다 둔화한 2.5%로 예측한다. 이 회사의 알렉스 홈즈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경제는 앞으로도 계속 더듬거릴(stutter) 것이다. 노동시장의 침체가 소비지출을 억누른다”고 분석했다.
국내외 기관들은 한국 경제가 ‘4개의 파도’에 둘러싸여 있다고 진단한다. ‘고용 절벽’ ‘추락하는 건설투자’ ‘반도체 빼면 빈껍데기인 수출’ ‘공포에 질린 금융시장’이 그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실업자 수는 올 들어 매월 100만명을 상회하고 있다. 1∼9월 평균치는 117만7100명에 달한다.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같은 정책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도 공개됐다. 홈즈 이코노미스트는 “연초 최저임금의 공격적 인상으로 노동시장은 이미 급격히 악화됐다”고 평가했다.
늘어나는 실업자는 건설투자 부진과도 닿아 있다. ING그룹은 “한국 경제의 유일한 장점은 지적재산(IP)뿐이며, 건설투자는 극도로 약해져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에 따르면 3분기 건설투자는 전기 대비 6.4% 감소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건설 설비의 생산 자체가 줄어들고, 일감을 잃어버린 덤프트럭 차주들이 할부금을 제때 내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조그마한 캐피털업체에서도 나올 정도다.
한국 경제의 ‘믿는 구석’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이다. 반도체 수출은 호조세다. 다만 반도체를 둘러싼 국제 경제의 흐름에 사뭇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그룹과 스티펠 니콜라스의 애널리스트들은 지난달 반도체 제조업체들에 ‘피크(경기 정점)’가 다가왔다는 식으로 경고했다. 모건스탠리가 반도체 투자 전망을 ‘중립’에서 ‘주의’로 하향 조정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높게 치는 한국 경제의 전통적 강점은 ‘순무역’이었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극심해지고 국제유가가 상승하면서 수출 대외여건은 나빠지고 있다. ‘경제 기초체력’에도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호주뉴질랜드은행(ANZ) 소속 경제학자 크리스털 탠은 “한국의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의 성장세가 느리다”며 “한국의 수출 성장을 억누를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은행들이 말하는 한국 경제의 불안심리는 증시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고 있다. 지난 26일 기준으로 코스피지수는 2027.15를 찍어 올해 들어서만 18% 가까이 하락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6.94%), 홍콩의 항셍지수(-17.38%)보다도 낙폭이 컸다. 금융시장이 실물경기 둔화 우려감을 미리 반영한다는 점을 고려해도 하락 기간은 길다. 증권사들조차 낙관적이지 못하다. NH투자증권은 “내년 기업이익에 대한 확인 심리가 강해 당분간 (증시에) 상승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이경원 임주언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