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경기 하강곡선을 긋고 있다. 생산은 물론 투자·소비가 모두 부진에 빠졌다. 실물경제 지표뿐 아니라 금융시장도 흔들린다. ‘불황의 문’이 곧 열린다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9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현재 경기흐름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8.6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폭풍이 한창이던 2009년 6월(98.5)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 4월 99.7을 찍은 뒤 6개월째 내리막을 걷고 있다. 이 지표는 100을 기준으로 경기의 좋고 나쁨을 보여준다.
통계청은 경기가 하강 국면에 진입했는지를 판단할 때 이 지표를 활용한다. 통상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6개월 연속 하락하면 경기 하강 국면으로 본다. 6개월을 잇따라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떨어지기는 세월호 참사,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MERS) 사태가 있었던 2015년 11월∼2016년 4월 이후 처음이다.
여기에다 곧 다가올 경기 사정도 나쁘다. 3∼6개월 뒤의 경기 흐름을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 역시 전달보다 0.2포인트 떨어졌다. 경기가 하강기에 들어섰고, 더 나빠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기 하강 징후가 보다 뚜렷해진 배경에는 수출과 소비가 있다. 그나마 경기를 지탱하던 버팀목인 수출과 소비마저 흔들리면서 본격적인 경기 하강이 시작된 셈이다. 그동안 정부는 수출과 소비가 떠받치고 있어 아직 경기 하강 국면에 접어들지 않았다고 강조해 왔다.
소비 지표인 9월 소매판매액지수는 108.8로 전월보다 2.2% 내렸다. 하락폭은 지난해 12월(-2.6%) 이후 가장 컸다.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에도 불구하고 승용차 판매는 12.4% 줄었다. 수출은 5개월 연속 500억 달러를 돌파하며 고군분투 중이지만 극심한 ‘반도체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9월 전체 수출액에서 반도체 제품 비중은 24.57%로 역대 최고치까지 치솟았다. 반면 자동차, 철강 등 주력 수출제품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도체 경기 고점 논란이 불거지고 있어 언제 수출이 고꾸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황이다.
소비와 수출이 부진하면서 산업생산도 줄고 있다. 9월 전산업생산지수는 106.6으로 지난달보다 1.3% 떨어졌다. 2013년 3월(-2.0%) 이후 5년6개월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이다. 자동차와 조선업 구조조정 영향이 계속되면서 광공업생산은 전월 대비 2.5%나 감소했다.
6개월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던 설비투자 증가율은 9월에 2.9% 증가로 돌아섰다. 다만 SK하이닉스 청주공장 준공을 앞두고 반도체용 장비투자가 늘어난 일시적 요인에 힘입은 ‘반짝 반등’이다. 또한 지난해 9월과 비교하면 설비투자는 19.3%나 감소했다.
어운선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설비투자가 7개월 만에 증가했지만, 주요 지표가 대부분 감소세로 전환하거나 계속 줄어들면서 전월보다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며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6개월 연속 떨어진 것을 볼 때 현재 경기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부정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다. 한국의 수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두 나라(미국 중국) 사이에 무역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데다 국내 금융시장은 공포에 잠식되면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가 본격화되는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