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로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으로부터 배상받을 길이 열렸지만 또 다른 일제 강점기 피해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은 2년째 첫 발짝도 떼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소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부장판사 유석동)는 11월 28일 곽예남 할머니 등 20명이 일본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첫 변론기일을 지정했다. 그러나 예정대로 재판이 열릴지는 미지수다. 앞서 재판부는 지난해에도 다섯 차례 기일을 잡았지만 번번이 연기됐다. 일본 정부가 소장 송달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일본 외무성은 ‘헤이그송달협약 제13조에 따라 자국의 안보 또는 주권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해 이행할 수 없다’며 소장을 일본 법무성에 보내지도 않고 반송했다.
민사소송은 소송이 제기된 상대방(피고)에게 소장이 송달돼야만 개시할 수 있다. 일반적인 경우 피고 소재 파악이 되지 않는 등 계속해서 송달이 이뤄지지 않으면 법원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소장을 게시해 피고에게 송달됐다고 간주하는 ‘공시송달’ 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피고가 일본 정부인 이 사건에서는 공시송달을 할 수도 없다.
강제징용 피해 사건은 상대가 일본 정부가 아닌 기업이었기 때문에 소장 송달이 가능했다.
위안부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인단은 법원행정처를 통한 송달에 실패하자 외교적 해결 방안을 타진한 상태다. 변호인단은 지난해 10월과 지난 2월 우리 외교부에 사실조회서를 보내 외교적인 해결방법이 존재하는지 알아봐줄 것을 요청했고, 최근 외교부는 일본 외무성을 상대로 소장 송달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일본 정부가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높지 않다. 30일 대법원의 강제징용 사건 판결 이후 아베 신조 총리가 즉각 반감을 표하는 등 일본 정부의 태도는 더 강경해진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검찰 수사에서 지난 정부 양승태 대법원이 위안부 소송에 개입하려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법무법인 지향의 이상희 변호사는 “정부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당위적 과제는 더 무거워졌다”면서 “적어도 할머니들이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재판으로 청구할 수 있는 외형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 정부도 끝까지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기억연대도 논평을 내고 “일본 정부는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고 우리 정부는 외교적 절차를 이행하고 책임질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